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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기다림3

깊은 밤 기다림 새벽에 일어나는 아내는 잠이 들고, 아직 누가 귀가하지 않은 듯한 느낌일 때가 있다. 아이들이 내 곁을 떠난 지 오래되어 가족은 벌써부터 단 둘인데도 그렇다. 조금 서글퍼지다가 기억들은 그 서글픔이 밴 따뜻함으로 바뀐다. 살아가는 일은, 나는 이제 거의 다 괜찮다. 2023. 11. 13.
내가 기다리는 곳 10~20분쯤, 길 때는 한 시간 이상일 때도 있습니다. 나는 10분도 좋고 한 시간도 괜찮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앉아 있거나 서성이거나 하는 것이 싫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기다리게 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누구를 기다려 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실없는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그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내가 기다렸었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 정겹기도 하지만 불편하기도 합니다. 무덤덤하게 떠오르고 말면 좋겠습니다. 눈물 글썽이거나 풀이 죽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거나, 그 어느 것도 달갑지 않습니다. '가랑잎 정도'로 소멸되면 그만입니다. 그러니까 바람 부는 곳도 따뜻한 곳도 필요 없습니다. 잘 듣고 기억하는지 몰라도 그걸 바란다고 이야기해 놓았습.. 2022. 11. 11.
이기성 「살인자의 시집」 살인자의 시집 이기성 안녕 프랑수아, 당신이 보냈다는 시집을 기다렸어요. 오늘도 시는 도착하지 않았어요. 그사이에 나는 이사를 했고, 킁킁거리는 이웃들은 나의 우편함에 관심이 많아요. 프랑수아, 당신은 먼 나라의 시인이고, 나는 당신의 말을 몰라요. 그래도 당신의 시가 내게 도착했다면 나는 기뻤을 거예요. 모르는 나라의 말로 쓴 시가 나를 기쁘게 하다니, 놀랄 것도 같았어요. 프랑수아, 당신의 시집은 어디로 갔을까요? 당신의 혀에서 솟아난 말은 어디로 흘러갔을까요? 당신의 시가 밤하늘에서 한 글자씩 흩어져 내리는 꿈을 꾸어요. 하얀 말들이 창문에 쌓이고, 그것은 눈이 내리는 풍경보다 아름다울 것 같아요. 프랑수아, 나는 아침에도 기다리고 밤에도 기다렸어요. 어쩌면 당신의 시에서는 살인자가 눈 속에 피 묻.. 2017.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