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리운 곳4

서귀포, 그리운 곳 이 선생님은 저곳에서 귤을 딴다고 했습니다. 도깨비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해서 "도깨비도감" "한국요괴도감" 드라마 "도깨비"등에서 본 도깨비들을 떠올리며 나는 도깨비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하자 어이없다는 듯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나보다는 나이가 좀 적을 이 선생님은, 학교에 출근하면 만나던 그날들에는 때론 누나처럼 혹은 여동생처럼 대해 주었는데 지금도 정장을 입고 교장실에 앉아 있는 나를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때와 달리 도깨비가 나올지도 모르는 곳에서 잡초를 뽑고 땅을 파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이제 비행기 타고 서귀포 가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게 되었습니다. 서귀포, 그리운 곳... 2023. 11. 1.
그리운 타히티 섬 육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타히티에 가까이 갈 때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정말 공상 속의 황금 왕국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타히티의 자매섬인 할 무레아 섬은 마법 지팡이가 만들어낸 허깨비처럼, 장엄한 바위섬의 모습을 망망한 바다 위에 신비롭게 드러낸다. 들쭉날쭉한 윤곽이 태평양의 몬트서래트 섬과 흡사하다. 거기에서는 폴리네시아 기사(騎士)들이 기이한 의식을 올리며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신성한 비밀을 수호하고 있을 것만 같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멋진 봉우리들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섬의 아름다움은 그 베일을 벗는다. 하지만 배가 곁을 지날 때에도 섬은 아직 비밀을 드러내지 않은 채, 침범을 허용치 않으려는 듯 다가가기 힘든 험준한 바위들로 자신을 엄중히 감싸고 있는 듯하다. 산호초 사이로 겨.. 2020. 12. 4.
서점에서의 감각 방금 어떤 작가가 다녀갔을 것 같은, 몰라서 그렇지 어떤 작가는 아직도 서성거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부자도 별 수 없을 것 같은, 그와 나를 구분하는 척도가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돈을 많이 가져본 적 없어서 그럴까요? 마음이 안정될 때도 있었고 들뜰 때도 있었습니다. 잡념이 사라질 때도 있었고, 어떤 책을 발견하게 될까, 어떤 책이 나를 기다릴까,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되고, 할 일이 없으면서도 머리가 분주해지곤 했습니다. 여기에 더 있을까, 저곳으로 가볼까, 있을 만한 곳이 여러 곳인 놀이터였습니다. 사치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서글픈 일일까요? 들고 가기에 부담스러울 정도여도 2~3만 원, 대부분 1~2만 원이면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믿음직스럽고 부러.. 2019. 2. 7.
향수(鄕愁) 「추억은 혼자 분주하다」(『강변이야기』, 2011.3.16. 내 마음의 풍경) 중에서 이 길로 가면 저 외딴집에 이르게 됩니까? "그렇지 않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다른 곳에 이르른다 해도 그곳도 괜찮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리워할 사람이 없었을 때, 세상에 그리운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좋은 시절에는, 저도 저 길을 다녔습니다. 어디로 간다 해도 좋은 길…… 이제 나이들어 그 길이 그립습니다. 그리워졌습니다. "해질녘/강가에 서면/더욱 막막할 뿐//더욱 더 깊어질 뿐" 그렇지 않아도 이미 '나는 이제 막막하구나, 막막해졌구나, 점점 더 막막해지는구나' 싶었는데, 찬찬히 읽고, '막막함'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막막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그 막막함이란 어.. 2011.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