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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10

지식의 쓰레기 지식도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가 된다. 가령 인터넷에서 보는 '지식'에서 그 쓰레기를 구분하지 못하여 낭패를 보는 경우는 허다하다. 지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금도 우리 생활에 유용한 지식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이 나오면 그 새 지식이 나온 부분의 묵은 지식은 당연히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에서는 학생들에게 전해줄 마땅한 지식을 선정하기 위한 작업을 한다. 새로운 지식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지 말아야 할 쓰레기 같은 지식은 어떤 것인지, 잘 구분해서 선정하려고 한다. 그걸 정해놓은 것이 '교육과정'이고, 그 지식을 실제적으로 담아놓은 것이 '교과서'다. 나는 서울에 올라와 사당동 전셋집 2층에서 혼자 살 때, 초등학교 사회과에서 가르쳐야 할 지식을 선정하는 일을 잘해보려고 벽.. 2023. 12. 13.
국가교육위원회에 거는 기대 1992년 교육부는 역사적인 선언을 했다. “교육과정 최종 결정권은 교과서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와 교사들이 최종 결정한다!”(제6차 교육과정) 교사들에겐 교육과정 같은 건 안중에도 없던 시절이었다.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담긴 교과서대로만 가르치면 하등 문제가 없었다. 수업을 공개한 뒤 교장·교감이나 장학사가 생경한 책자를 펴들고 “이 수업을 교육과정에 비추어보았더니 어쩌고 저쩌고…” 하면 ‘높은 분들은 저런 문서를 보는구나!’ 생각했을 뿐이었다. 교육부에서는 교사들이 궁금해 하지도 않는 일들을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설명하고 설득했다. “이제 교육과정 결정권을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가 분담하게 되었다” “교육부는 기준을 개정하고, 교육청은 지역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학교는 최종적으로 그 학교만의 교육.. 2022. 10. 28.
우산 받쳐주는 선생님 (2021.6.25. 수원일보) 3학년 아이들이 운동장 트랙을 달린다. 질서정연하다. 한 아이가 엎어지더니 일어나지 못한다. 선생님이 못 봤겠지? 한 바퀴 더 돈다. 엎어진 아이를 비켜서 달린다. 창문으로 내다보던 교장이 나가서 아이를 보건실까지 업어다 주었다. 오후에 선생님과 교장이 만났다. “잠깐 아이를 보건실에 데려다주시지 그랬어요?” “수업은 어떻게 하고요?” “애들도 이해해 주지 않겠어요?” “3학년이요? 당장 엉망이 되는데요? 스스로 일어나야지요!”… 선생님은 교장의 견해를 수용하려들지 않았다. 복음 얘기를 해보았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고 했잖아요?” “그 한 마리는 죄인을 가리키는 것 같던데요? 그 애가 죄인인가요? .. 2021. 6. 25.
서영아, 사랑해! 재미있게 지내고 와~ (2021.5.30. 수원일보) 아침 등교 시간에 초등학교 교문 앞에 가보면 학부모들의 간절한 기원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서영아, 사랑해!” “좋은 하루 보내!” “교장 선생님께 인사 잘하고~” “여기 있을게, 잘 갔다 와~” “재미있게 지내고 와~” “사랑해!” “많이, 많이 사랑해!”… 정겨운 한 마디에 절대적 사랑과 기대가 배어 있어 따스하고 눈물겹다. 교육자가 아니어도 저 아이들을 지켜주는 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책무성 같은 걸 느끼게 된다. 주로 초등학교 1, 2학년 부모의 경우지만 자녀가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이라고 해서 다를 수 없을 것이다. 횡단보도를 다 건넌 아이를 불러 굳이 사랑한다고 외치는 어머니, 아이들을 맞이하는 교장 선생님이 보이자 저만큼 걸어가는 아이에게 인사 잘하라고 부탁하는 어머니… 총총 멀어져 간.. 2021. 5. 30.
"자랑스러운 편수인상" 수상 소회 1986년, 초등 교사였을 때 편수를 돕기 시작해서 1989년 12월, 파견근무를 하며 5차 교육과정 초등학교 사회, 사회과탐구 편찬 업무에 참여했고 1993년 6월에는 편수국 교육연구사가 되었습니다. 2년간의 시·도별 사회과탐구 개발은 연구진·집필진·삽화진 전체를 지역별로 구성했는데 열두 번의 연수회를 열고도 그 원고를 일일이 써주다시피 했으므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간 초등학교와 특수학교 각 장애영역별 초등부 사회과 교과서도 동시에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편수는 외로운 것이었습니다. 설날도 추석도 없이 교과서 원고나 삽화, 혹은 이미 개발된 교과서를 읽고 고치고 고친 것을 또 고쳤고 직접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전철에서도 교과서를 읽고 고치다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고 쓰러져서 병원에 실.. 2018. 4. 10.
"나는 학교에서 처음 해본 것이 너무 많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자전거를 배웠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연극을 해보았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좋아하는 애에게 고백했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친구에게 사과할 용기가 생겼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세상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 나는 학교에서 처음, 내가 꼭 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신선하다고 할 이가 많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 언제 대학 입시 준비를 할까, 걱정할 이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육이 그렇게 입시 준비에 빠져버려서 정작 해야 할 공부는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교과서의 내용을 암기하고 암기한 것으로 오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공부(?)에 매달려서 하고 싶은 공부, 해야 할 공부는 안중에도 없는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교.. 2018. 3. 11.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 『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실제』 『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실제』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공저), 두산동아, 1994. Ⅰ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학교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해왔습니까? 현장 교원들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이 나오기 전에는 '교육과정'이라는 문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학교 교육과정'이라는 말은 거의 듣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나도 한때 교사였기 때문에 확언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교사가 되었을 때에는, 아니 그렇게 몇 년간 교사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교육과정』이라는 그 책자는 교감이나 교장만 보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교과서와 전과, 수련장 같은 것을 보는 것이어서 교사가 교장, 교감이나 보는 책을 찾는 것은 무슨 불경(不敬)에 해당.. 2015. 2. 15.
외고문제와 공교육의 차별화 (2009년 11월 4일) 외고문제와 공교육의 차별화 외국어고등학교를 둘러싼 논란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전개됐다. 지난달 15일,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해 외고입시를 폐지하겠다고 밝힌데 따른 논란이었다. 그는 “장관에게만 맡겨서는 사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만큼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 여파로 ‘사교육은 만악(萬惡)의 근원’ ‘외고는 사교육 과열 주범’이라는 논의가 가열되기도 했다. 이어 정부에서는 외고가 영어․구술면접․내신으로 학생을 선발해 사교육을 조장했으므로 내신과 ‘쉬운 영어’로 선발하는 국제고로 전환하겠다고 나섰다. 외고들은 ‘사교육 경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고 ‘이름을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었다. 이에 정 의원이 추첨으로 선발하는 특성화고로 전환하자는 안.. 2009. 11. 4.
‘국가교육과정위원회’의 필요성 ‘국가교육과정위원회(가칭)’의 필요성에 대해 무슨 논리를 세워서 하고자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로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재주가 없습니다. 그냥 교육과정(국가교육과정, 교육과정기준)이 소홀히 다루어지고, 그것(교육과정)이 곧 교과서인양 왜곡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 교육과정에 대한 일반적 인식 우리나라처럼 ‘교육과정’을 무시하고 소홀히 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요?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 국민들은 제6차 교육과정기까지는 그런 게 있는지조차 잘 몰랐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제7차 교육과정 적용기에 이르러 교육현장에서 “우리는 여건도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렇게 수준 높은 요구를 하는 교육과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비판이 일고 심지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선두로 시위.. 2008. 6. 19.
무얼 이야기하러 그렇게 돌아다니나? 저는 자주 강의를 하러 다니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 강의의 내용이 특이하거나 새로운 것이 아니라 현장 교육에서 기본이 되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어서 제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없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작정하고, 그 내용을 밝힙니다. 이제 저는 교육자로서의 길에서 떠나야 할 때가 가까이 왔으므로 이 강의초를 바꾸거나 더 다듬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이 기회에 한가지 덧붙이면, 어떤 교장은 자기네 학교에 와서 강의 좀 해달라고 하는데, 사실은 같은 교장으로서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은 상당히 용기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김 교장이 와서 우리 교사들에게 떠들어도 나는 그 결과를 다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교사들을 잘 지휘할 수 있다'는 생각 없이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 2008.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