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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가을밤5

이 세상의 귀뚜라미 귀뚜라미가 울고 있었다. 덥긴 하지만 처서가 지난 주말이었다. 귀뚜라미는 가을이 왔다는 걸 귀신같이 안다. 2004년 9월, 십몇 년 간 세상에서 제일 번화한 광화문에서 근무하던 내가 용인 성복초등학교 교장으로 갔을 때 그 9월은 가을이었다. 가을다웠다. 나뭇잎들은 화려했다. 그렇지만 그곳 가을은 조용하고 쓸쓸했다. 귀양이라도 온 것 같았다. 아침에 교장실에 들어가니까 귀뚜라미가 울었다. 내가 멀리서 통근한다는 걸 엿들은 그 귀뚜라미가 설마 정시에 출근하겠나 싶었던지 마음 놓고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신기하고 고마웠다. "귀뚜라미가 우네요?" 광화문 교육부 사무실에서 전쟁하듯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어야 할 말인데 그럴 수가 없어서 눈에 띄는 아무에게나 알려주었다. 5분도 되지 않았는데 기사가 들어오더니.. 2023. 9. 17.
안현미 「와유(臥遊)」 와유(臥遊) / 안현미 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허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 2012년 11월 2일, 비감어린 그 저녁에 이 시를 옮겨적었는데 나는 여전합니다. 다만 내가 정말 한지에 연서를 쓸 수 있겠는가 싶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바스라지는 것일까요? 그날 장석남 시인이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에 소개했습니다. 2022. 10. 11.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Op.73 '황제' (L.v.Beethoven, Piano Concerto No.5 'Emperor') 가을이 온 이후 주말에는 꼭 한 번씩 듣고 있어. 언제까지? 글쎄? 베토벤은 죽은 지 오래인데 딴생각을 못하게 해. 그의 사진을 떠올리면 더욱... 당연히 일도 못해. 딴생각을 못하고 일도 못하니까 아예 듣지 않으면 되는데 자꾸 듣네. 멍하게 앉아 있는 것도 이젠 괜찮겠지? 괜찮을까? 하기야 일부러 멍하려면 그것도 꽤나 힘들긴 하지? 이러다가 겨울이 오겠지? 좋은 가을밤인데... iframe width="1085" height="610" src="https://www.youtube.com/embed/LYUrPqaG11Y" title="21세 조성진│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Op.73 '황제' (L.v.Beethoven, Piano Concerto No.5 'Emperor') Pf.Seongjin Ch.. 2022. 9. 17.
그리운 지난해 겨울 건너편 아파트에서 저녁 늦게까지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떤 이야긴지도 모른 채 포근함을 느낍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이곳 여름 장마는 지난 8월 29일 토요일 저녁에 끝났을 것입니다. 새벽까지 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서였던지 가벼운 감기에 걸렸었습니다. 아무래도 여름밤 같지 않게 스산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지난 겨울날들의 꿈을 꾸었습니다. 지난겨울은 아무런 생각 없이 지냈습니다. 저녁이 되면 일주일에 서너 번 헬스장에 갔고, 가수 M도 만났습니다. 눈이 아주 큰, 젊은 가수 M. 나처럼 허름한 운동복을 입고 있어서 바라보기도 편했습니다. 그도 우리 아파트에 사는데 사람들은 개그만 A, 탤런트 I 부부 이야기만 합니다. 헬스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나는 올해 내내 가지 못했습니다. 암.. 2020. 9. 6.
울음 울음 가을 저녁입니다. 세상을 거덜낼 것처럼 나대는 사람이 없진 않지만 여기는 풀벌레 소리뿐입니다. 쓸쓸하긴 합니다. 저것들은 저러다가 숨이 넘어가는 것 아닌가 싶도록 울어댈 때도 있습니다. '저렇게까지……' '뭘 그렇게…… 그런다고 무슨 수가 날까……' 그러다가 고쳐 생각합.. 2016.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