枕草子8 세이 쇼나곤의 글 무라사키 시키부의 일기는 관심이 없지는 않은 여학생의 일기가 우연히 눈에 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기에 비해 세이 쇼나곤은 에세이스트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두 여방의 글을 읽은 느낌을 이야기하라면 그렇더라는 의미다. 가녀린 풀꽃─ 풀꽃은 패랭이꽃이 당나라의 것은 물론이고 일본 것도 멋있다. 여랑화, 도라지꽃, 나팔꽃, 솔새, 국화, 콩제비꽃.용담은 가지가 엉키기는 했지만 다른 꽃들이 다 서리를 맞아서 말라버렸을 때 매우 화려한 색깔로 꽃을 피우는 것이 풍취 있다.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가마쓰카 꽃이 가련하고 예쁘다. 이름이 별로이기는 해도 한자로 쓸 때 기러기가 찾아오는 꽃(雁來鴻)이라고 하니까 그 나름대로 멋이 느껴진다.동자꽃. 색깔이 그렇게 짙지 않으나 모양이 등꽃과 비슷하고, 봄과 가을에 .. 2024. 8. 25. 무라사키시키부(紫式部) 《무라사키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 무라사키시키부(紫式部) 《무라사키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정순분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재미있다.무라사키 시키부는 헤이안 시대 '이치조 천황'의 부인 '쇼시 중궁'을 시중든 여방(女房)이었다. 여방은 궁궐이나 귀인의 집에 기거하던 여자 관리로 단순한 시녀가 아니라 가정교사 역할까지 담당하면서 문예활동으로 가문을 빛내기도 했다. 무라사키 시키부도 쇼시 중궁에게 백낙천의 문집으로 한시를 가르치기도 했다. 이 일은 아무도 모르게 하고 있어서 중궁님조차도 그 사실을 다른 곳에 전혀 말씀하시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대감님과 주상 전하께서는 어떻게 아셨는지 중궁님을 통해 한문책을 보내와 필사를 명하곤 하셨습니다. 중궁님께서 제게 한시문을 배우고 계시다는 사실이 그 입 가벼운 여방 귀에 안.. 2024. 8. 21. 세이 쇼나곤 / 새벽에 헤어지는 법 새벽녘 여자네 집에서 돌아가는 남자는, 너무 복장을 단정히 하거나 에보시 끈을 꽉 묶지 않는 것이 좋다. 옷차림이 조금 흐트러졌다고 해서 누가 흉을 보겠는가? 밤을 같이 보내고 새벽이 가까워 오면 남자는 자리에 누운 채 일어나기 싫다는 듯이 우물쭈물하고 있어야 한다. 여자가 "날이 다 밝았어요. 다른 사람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하는 재촉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 앉는다. 일어나 앉아서도 바로 사시누키를 입으면 안 되고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생각에 잠긴 듯이 있다가 귓속말로 밤에 있던 일을 속삭이며 슬그머니 속곳 끈을 묶고 일어서야 한다. 격자문을 밀어 올리고 쪽문까지 여자와 함께 가면서 낮 동안에 못 보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다시 한 번 귓속말로 속삭인다. 그런 식으로 해서.. 2024. 3. 19. 세이 쇼나곤 / 은밀한 곳의 멋 사람 눈을 피해 간 곳에서는 여름이 가장 운치 있다. 밤이 짧은 탓에 한숨도 못 자고 새벽을 맞이하노라면, 어느덧 뿌옇게 동이 터 오면서 주위가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밤새 하던 얘기를 이어 가고 있으면 파드득하고 머리 위로 까마귀가 갑자기 높이 날아올라,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것은 아닐까 하고 가슴이 마구 뛴다. 또한 겨울밤 아주 추울 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덮은 옷 속에 파묻혀, 저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종소리를 함께 듣는 것도 정취가 있다. 그 즈음 닭이 울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부리를 날개 속에 처벅아 먼 곳에서 우는 것처럼 들리다가, 날이 밝아 옴에 따라 점점 가깝게 들려온다. 은밀했던 그 순간이 산뜻한 새벽별이 보이는 수채화가 되었다. 1000여 년 전 헤이안 시대의 궁중 여인(여.. 2024. 3. 2. 세이쇼나곤 「연꽃 이슬」 보다이사(菩提寺)라는 절의 결연팔강(結緣八講)에 참배했을 때 어떤 사람이 '어서 돌아오시오. 매우 적적하오이다'라는 편지를 보냈기에, 어렵게 찾은 은혜로운 연꽃의 이슬을 두고 그 허무한 세상에 어찌 다시 갈까나 もとめてもかかる蓮の露をおきて 憂き世にまたは帰るものかは 라고 써서 보냈다.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가슴속 깊이 와닿아서 더 있다 갈 것을 생각하니, 중국 고사에서 집 식구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린 상중(湘中)과 같은 심정이었다. 일본 헤이안 시대 이치조(一條) 천황의 중궁 데이시의 여방 세이쇼나곤(淸少納言)이 지은 《베갯머리 서책(枕草子)》에서 옮겨 썼다. 결연팔강(結緣八講)이란 불도와 인연을 맺기 위해 하는 법화팔강(法華八講)으로, 법화경(法華經) 8권을 8좌(座)로 나누어 하루에 두.. 2023. 12. 19. 세이쇼나곤(淸少納言) 「승려가 되는 길」 애지중지하며 키운 아이를 승려로 보내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승려는 마치 나뭇조각인 양 세상 사람들이 하찮게 여길뿐더러, 공양 음식같이 맛없는 것만 먹어야 하고, 앉아서 조는 것도 비난을 받는다. 젊을 때는 이런저런 호기심도 있을 텐데 마치 여자라면 진저리라도 난다는 듯이 잠시도 곁눈질해서는 안 된다. 잠깐 보고 마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도 없을 텐데 그것조차 못하게 한다. 수도승한테는 더욱 심하게 군다. 계속된 수행에 잠시 꾸벅꾸벅 졸기라도 하면 "독경은 안 하고 졸기만 해"라며 금방 투덜거린다. 승려가 된 사람은 한시도 마음 편할 새가 없으니 얼마나 괴로울까? 하지만 이것도 옛말인 것 같다. 요즘은 너무 편해 보인다. 일본 헤이안 시대 이치조(一條) 천황의 중궁 데이시의 여방 세이쇼나곤이 지은.. 2023. 12. 12. 늙은이의 진부한 노래 세상에서 이미 잊힌 늙은이가 자기가 할 일 없으니 남도 그럴 거라고 착각하고 한창 바쁜 사람에게 옛날풍의 진부한 노래를 읊어 보내는 것도 썰렁한 일이다. 일본 헤이안 시대에 데이시 중궁의 여방으로 발탁된 재녀 세이쇼나곤의 《베갯머리 서책(枕草子)》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도 더러 그렇게 말은 했지만(현직에 있는 사람들은 늘 바쁘다고, 이쪽에서 그들에게 연락해서는 안 된다고) 정말 그런 줄은(옛날풍의 진부한 노래를 읊듯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몰랐던 것 아닌가 싶다. 나는 아직 저승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 이승 사람도 아니다. 명심해야 한다. 그런 줄 알면 될 것이다. 2023. 6. 10. 겨울의 멋 겨울은 새벽녘, 눈이 내리면 더없이 좋고, 서리가 하얗게 내린 것도 멋있다. 아주 추운 날 급하게 피운 숯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은 그 나름대로 겨울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때 숯을 뜨겁게 피우지 않으면 화로 속이 금방 흰 재로 변해 버려 좋지 않다. 세이쇼나곤(淸少納言) 《베갯머리 서책 枕草子》(정순분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1. 사계절의 멋' 중 겨울 부분. 2023. 1. 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