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에는 학생들이 눈에 잘 띈다. 산책하러 나가다가 엘리베이터에서 20층에 사는 봄이를 만났다. 얼굴에 화장품 떡칠한 걸 본 순간 놀랐지만 “저 이제 대학 다녀요!” 해서 태연한 척 축하해주며 생각했다. ‘다른 애들처럼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화장을 해보지 않아서 저모양이구나. 늦긴 하지만 곧 익숙해지겠지’
중학생 주제에 화장을 한다고 손가락질하고, 남녀 중학생이 벌써부터 아파트 벤치에서 노닥거린다고 못마땅해 하지만 기준연령이 정해진 건 아니다. ‘이팔청춘’이 괜히 있는 말도 아니다.
하교 시간이어서 곳곳에 학생들이 보였고, 여기저기 데이트하는 학생들도 보였다. 나란히 걸어가던 여학생 중 한 명이 돌아서더니 잠시 남학생을 껴안고 있다가 지나가는 나를 의식하고는 다소곳한 자세를 보였다. 이런 모습 보며 개탄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 되돌릴 수 없고 되돌릴 필요도 없다.
동네 어귀에서 남녀 학생 대여섯 명이 둘러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더니 저만큼 걸어가던 여학생 한 명이 돌아서서 남학생들 쪽을 보고 외쳤다. "나쁜 짓 하지 마!"
대견스러웠다. 든든하기도 했다. 이런 말의 느낌과 의미에 따라,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학생들의 가슴속을 살펴보고 그들의 생활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산출하면 좋겠다. 우리는 그런 프로그램을 어른들이 나서서 다 만들어버리니까 그게 탈이다.
청소년들은 당연히 온갖 행태를 다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언제 어느 사회에나 있었던 모습들이기도 하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흔하게 눈에 띌 것이다. 우리는 그걸 충분히 짐작하고 좋은 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추며 살아야 한다. 나쁜 청소년들도 있다. 그런 청소년들도 다 기성세대가 만들었다. 우리는 청소년의 생활을 다시 연구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공부를 가르친다'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구실(!)로 그들의 관점을 너무 소홀히 여겼다.
분명히 "모르는 소리 마라!"고 할 것이다. 그동안에도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며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의 온갖 비리를 열거할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은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렇다고 저 청소년들이 악마는 아니지 않은가? 어디 몹쓸 곳에서 수입해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모든 건, 일방적으로 ‘설명듣기’를 강요하는 공부에 치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학생들 스스로 배우도록, 생각하도록, 활동하도록, 우리는 그냥 지켜보며 도와주기만 하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저 학생들의 생활이 더 밝고 더 긍정적이고 더 발전적일 것을, 우리가 모든 걸 다 설명해주고 싶어서, 학생들이 조용히 바로 앉도록 강요했고, 다른 짓은 전혀 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오늘 이런 모습의 학생, 이런 모습의 학교로 정착되었을 것이다.
일단 학생들에게 다 돌려주었으면 싶다. 공부도 돌려주고, 생활도 돌려주어 새로 시작하면 좋겠다. 그러면 당장은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성적이 낮아질 것이다. 그게 대수인가!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싶어 하고, 서로 정답게 지내고 싶어 하고, 서로 도와가며 공부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면 그만일 것이다.
교육청에서 학생들의 생활에 관한 업무를 전문적으로 다루었던 이른바 학교폭력 대책 전문가에게 이 말을 해보았다. “나쁜 짓 하지 마!”가 참 따뜻하게 들렸다고. 그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건 다른 여학생과 만나지 말라는 단순한 경고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단 한마디, 그 짧은 한마디를 가지고 이처럼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전문가들의 판단과 역량에 따라 ‘학폭’ 관련 규정은 날이 갈수록 정교해진다. 그러면서 교장과 교사들의 활동 폭은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그 전문가는 교장이 나서서 섣불리 중재하다가 변호사법 위반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렇지만 "나쁜 짓 하지 마!" 그날 고운 목소리의 그 부탁을 들으며 앞으로 저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것, 더 큰 것을 기대하고 싶었다. 그 한마디가 충격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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