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상한 척해 봐도 별 수가 없는 게 인간이다. 돈이 많아 봐야 별 수 없고, 친구가 많아 봐야 별 수 없고, 자녀가 많고 다 잘 되었다 해도 별 수 없는 게 인간, 죽음이다.
아내는, 2009년 겨울, 내가 처음으로 병원에 드나들게 됐을 때는 별 기색이 없었다. 저러다가 말겠지 생각했거나 뭐 별 일이야 있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며칠간 병실에 들어앉아서 별별 검사를 다 하고 있는 걸 좀 못마땅해하기도 했는데, 큰 병원으로 옮겨 가슴을 열고 중환자실에 들어가자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일반병실에 있다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되면 당연히 그 일반병실은 비워야 한다.
아내는 그걸 모르고 '이제 드디어 죽는구나!' 했단다. 그러니 그 병실을 비우며, 둘이서 먹으려고 준비한 과일이나 음료수를 옆사람들에게 다 나눠주고 나오는 마음이 어떠했겠나.
중환자실에서 나는 피를 많이 쏟았다. 드디어 진정되었을 때 가족 면회가 허락되었다.
아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많이 기다렸지?"
검사만 했으면 20분 이내에 끝난다는데, 예정과 달리 사지를 잘라 막힌 혈관을 뚫는 '풍선'(스텐트)을 넣느라고 1시간 이상이 걸렸으니까. 우리 맘대로 하는 건 아니지만, 둘이서는 20분 정도 걸려서 나오기로 무언(無言)으로 약속했던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덧붙였다. "많이 아프더라."
그건 가슴속에 무언가 약물을 넣었을 때를 이야기한 것이다. 안 아프면 0, 많이 아프면 10, 보통이면 5로 말하라고 했고, 그간 일반병실에서 의사나 간호사의 물음에 몇 차례 대답한 경험도 있었지만, 그때 그 수술대 위에 누워서는 '조금 더 있으면 이거보다 더 아플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이걸 7이라고 할까 8이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점점 더 쓰라려서 얼른 "많이 아픕니다." 그렇게 뭉뚱그려 대답하고는 정신을 잃었다. 그걸 아내에게는 그렇게 말했다. "많이 아프더라."
"아픈 게 10 정도 되더라." 우리끼리 그런 식의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뭘 하겠나.
그녀에게 그렇게 단 두 마디 그 말을 하고나자마자 잠시 아물었던 혈관이 또 터져 내 피는 다시 콸콸 쏟아졌다. 매일 아침 아스피린을 복용하라고 해놓고 검사하려고 입원시켜 놓고 보니까 위급한 상황이라 의사가 당장 혈관을 잘라서 풍선을 집어넣었으니 그 혈관의 자른 부분이 얼른 아물 리가 업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아내는 내 곁에서 또 '긴급히' 쫓겨났고, 젊은 의료진 네 명이 사지를 내리눌러 억지로 지혈을 시켰다. 나는 그때 또 정신을 잃었다. 또 오래 걸렸다.
그러는 몇 시간에 아내는 거의 초주검이 되었었다. 문병 온 사람들이 나보다 우선 그녀를 찾았겠지.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피부가 새파랗게 되었고, 손을 잡아보니 싸늘해졌더란다.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이니까 문병객이 묻는 말에 대답도 하고 서성거리기도 하는데 몸에 피가 잘 흐르지 않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아픈 나보다 더 아파하니까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나는 그녀에게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55년은 이미 지나간 세월이니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남은 시간 그러니까 그 시간이 잠시라 하더라도 그 시간만큼이라도 "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까지 살아가는 일에 서툴러서 쩔쩔매고 있으니……
나는 그 중환자실에 머문 시간이 남보다 훨씬 길었다. 늦게 들어온 다른 환자들은 다 나가는데, 남들은 길어야 하룻밤을 자고 나가는데, 사흘을 그곳에서 지냈다. 화장실 가고 싶은 일 등 애로 사항은 설명하지 않겠다. 그동안 아내는 중환자실 복도에서만 지냈다. 그 복도는 의자조차 없는 곳이다.
그녀도 어리숙하지 않거나 상황판단을 객관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그 시간에 뭘 사 먹기도 하고, 그 넓은 병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어디서 눈도 좀 붙이고, 바람도 좀 쐬고, 할 만한 일, 구경할 만한 일도 더러 있을 텐데 '남편이 혹 나를 찾으면 어떻게 하나?' 오직 그 생각만으로 그곳에서 그렇게 서성거렸다.
그걸 두고 "사람이 왜 그리 어리숙하냐?" "사람이 왜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느냐?"고 할 수는 없다.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해서 집으로 돌아왔고, 좀 지내면서 119를 불러 두 번째, 세 번째로 실려가게 되자 그제야 그녀도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내가 좀 힘들어하면 물끄러미 바라보며 측은한 표정으로 그냥 이렇게 묻는다.
"그렇게 해서 살겠어요?"
그러면 나는 되는대로 "응." 하고 대답한다.
죽음은 언제나 내 곁을 서성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내는 것이 속 편할 것이다. 그냥 두면 죽을 것을 살려준지 어언 십오 년도 더 되었으니까 뻔뻔하고 무심한 나도 이젠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언젠가 내가 정말로 힘들 때, 그녀가 또 그렇게 묻겠지? "그렇게 해서 살겠어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지?
"죽겠어."
그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그렇게 영영 헤어질 수밖에 없나? 그렇게 헤어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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