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아름다운 사진을 본 것이 어느 해였는지는 모른다.
나도 한 젊음을 구가하던 어느 해 가을날이었다. 길만 나서면 천지의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그런 날이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온 '여신'일 것으로 생각해 온 그녀의 사진이 신문에 실려 있었다.
그녀는 야단스럽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하다.
푸르렀던 날에도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배우였고, 어느새 세월이 이만큼이나 흐른 2026년 지금도 그때처럼 좋은 배우다. 작품 활동을 많이 하지는 않고 TV에 자주 나오지도 않는다.
흔한 표현이지만 품위 있고 고급스럽다.
지금도 잊히지 않은 그녀의 그 사진은 더구나 '사진작가'의 작품이었고 "이 가을에 함께 차 한 잔 마시고 싶은 여인"이었던가 "이 가을, 커피숍에서 마주하고 싶은 여인"이었던가, 어쨌든 그런 제목의 칼럼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나는 그 기사를 보며 그 사진작가가 부러웠다.
사진작가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내가 그 칼럼을 썼어야 했다는 후회를 느꼈고, 기사를 다 읽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참 좋은 그 사진 속에는 그녀의 고운 모습뿐이었고, '다행히' 찻잔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실제로 그녀를 만난다면 어떻게 할지 상상하고 있었다. 빤히 쳐다보는 건 볼썽사나울 것이다. 인사를 나누고 차를 마시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저 몇 번만 바라보면 충분할 것 같았고, 음악과 책, 내 교직생활과 그녀의 연예활동 등 지나가는 얘기처럼 몇 가지만 묻고 대답하고 고마웠다면서 함께 일어서면 될 것 같았다.
시간은, 그렇게 길지는 않고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짧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늙어왔으면서도 내내 그녀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는데 최근 그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그녀가 예전의 그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내면은 여전히 그녀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모습'은 이제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아니,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나는 이렇게 노인이 되어가면서 한 해 한 해 이 주름살이 앞으로 또 어떤 기이한 형상으로 변해 갈지 스스로도 자못 궁금해지는데, 그녀는 성형외과에 어떤 요청을 했는지 그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때 그 젊은 날 그 얼굴과 거의 유사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그녀는 변한 것일까, 변하지 않은 것일까.
그래서 내 마음은 변했다는 얘기다. '내가 왜 이러지?' '지금 나는 제정신인가?' 아무리 정신을 차려봐도 도무지 그녀가 아름답게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이러한 내 변화를 섭섭해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해도 그렇지, 그 마음이 변하게 놓아두다니, 스스로 원망스럽기도 하다.
물론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겠지. 다들 그렇게 보고 있겠지. 탑(top)이고 여신(女神)이겠지. 그렇지만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걸 어떻게 아름답다고 하나. 이미 마음이 변한 걸 어떻게 억지로 아름답다 할 수가 있나.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결정했다.
어떤 결정인가 하면, 지금도 그녀는 주름살 하나 보이지 않는 예전의 그 '그녀'이기 때문에 앞에 있다 해도 나 같은 노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겠지만, 아니 그녀가 나처럼 주름살 투성이인 여성이라 해도 나 같은 사람을 거들떠볼 리가 없지만, 내가 "잠깐만요!" 하고 막무가내로 다가가면 주변 사람들이 나서서 당장 스토킹이나 그런 걸로 입건시켜 버릴지도 모르지만, 혹 유명인을 만나게 해주는 무슨 쿠폰 같은 게 있어서, 혹은 그녀의 멋진 자선사업으로 차 한 잔 함께하는 데 얼마의 거금(巨金)이 필요하고 그 비용을 모종의 문화사업 같은 걸 전개하는 어떤 재단에서 대신 지불해 주는 프로그램에 응모할 마음도 먹지 않았던 내가 덜컥 당첨되어 그녀를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 전철역 앞의 그 커피숍에서 잠깐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나는 이제 단호히 거절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젊었던 날의 내 그 꿈을 깨버리고 싶지 않다는 변명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실제로는 꿈 얘기는 꺼내지 않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저는 이제 입고 나갈 옷도 다 버렸고, 주름살이 너무 많고 깊어서 저 챗봇이 그린 그림 속 여자 같은 분과 마주 앉기가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렇게 하는 걸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지금 섭섭하긴 하다.
이제 '청춘남녀처럼'이 아니고 조용히 만나서 차 한 잔 나누고 약속 같은 것 하지 않은 채 헤어져도 좋을 여성 하나 없는 썰렁한 노인이 된 것이다.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긴 하다. 그러지 말고, 주어진 그대로 나이 들어가는 아름다운 사람이 더러 있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없다고? 늙어지면, 늙는 그대로 두면, 인간은 다 추한 것이라고? 그래서 밖에 나갈 때는 애써서 정장을 차려입는 것이고, 그래서 여성들이 대거 성형에 나서는 거라고?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성형을 하고 가꾸어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여성도 물론 많겠지만, 그건 당연한 노력이긴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아름다운 노년의 여성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나의 그 그림은 이미 다 구겨지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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