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셸 투르니에는 「기억과 습관」이라는 글에서 책 속의 역사, 박물관의 유물들, 도시의 유적들, 젊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공동체의 기념비 같은 것들은 집단적인 기억으로, 학교 교육의 일부가 된다고 했다(에세이집 《생각의 거울》).
그는 또 우리들 각자는 자신만의 과거를 가지고 있고 "그 과거는 편지나 사진들, 추억이 서린 물건들로 이루어진 조그만 박물관"이라고 했다.
'박물관'이라고 하니까 나도 생각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내게도 박물관이 있다!
내가 받은 편지들은 어디 있지?
사진은? 인화한 것도 있고, 인터넷에도 흩어져 있지?
추억이 서린 물건들?
나도 내 박물관을 가지는 건 너무나 좋은 일이지만, 그 박물관에 넣을 것들을 정리하려고 하면 편지보다는 사진, 사진보다는 물건들이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지금이라도 모으고 정리하고 해서 "이게 내 박물관이야!" 해 볼까?
그건 그렇고 미셸 투르니에는 집단적인 기억과 개인적인 기억에 대해 중요한 말을 했다.
이 두 종류의 기억은 우리로 하여금 균형 감각을 가지고 삶 안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뿌리 뽑힌 자들은 어떤 나라 안에서 고통스럽게 떠돈다. 그 나라의 과거가 그들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그는 또 시인 보들레르와 프루스트의 작품도 이야기했다.
유년 시절에 형성된 과거─보들레르가 "유년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푸른 천국"이라고 부르는 것─는 고통스러운 향수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순수한 시절을 다시 구성해 보고 싶다든가, 또는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마저 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의미이다. 이 작품은 진짜 개인적인 고고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 작품에서 강력한 지렛대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주 사소한 감각─예를 들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맛─때문에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 감정적 추억이다. 그는 그 지렛대를 사용하여 지나간 시절 전체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되살려 냈던 것이다.
미셸 투르니에는 이 글 끝에 다음과 같은 시를 붙였다.
나의 아름다운 선박, 오 나의 기억이여
마시기 고약한 짠 물 위에서
우리는 충분히 항해했다
아름다운 새벽에 떠나 슬픈 저녁이 올 때까지
우리는 지겹도록 항해하지 않았던가! 기욤 아폴리네르
'우리는 충분히 항해했다. / 아름다운 새벽에 떠나 슬픈 저녁이 올 때까지'
그렇다. 충분히, 이 슬픈 저녁이 올 때까지···.
박물관을 만들어 무엇하리.
내가 차려놓고 내가 관람할 것이라면, 이미 내 기억 속에 다 차려져 있는 그 박물관을 굳이 드러내어 무엇하리.
어차피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 진열하지도 못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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