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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내 책을 보면 세상에 이런 책이!' 하고 놀랄 것이라는 기대

by 답설재 2025. 4. 19.

↑ 위 : 오래전 「교사와 교육과정」 강의자료에 쓴 사진(출처 : 미상의 어느 신문)

 

 

 

 

처음에 책을 낼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이 뒤집어질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참고 있으면 된다.'

천만에!

놀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 있다. 단 한 명. 나 자신이다. '이럴 수가!'

 

미안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책을 출판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은 거의 다 그렇다고 보면 된다.

 

연전에 이른바 지인이 책을 냈다.

한여름이었는데 부지런히 읽고 독후감을 썼다. 열 일 제치고 일주일이 걸렸다. 그의 두 번째 소설이어서 이젠 작가이기 때문에 정성을 다했다.

그 독후감을 이 블로그에 실었다.

며칠 만에 그의 지인으로 짐작되는 여성이 비뚤어진 관점으로 혹독하게 쓴 독후감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가슴이 내려앉았고, 허탈했다. 그에게 이런 댓글을 달 만한 측근이 있는지 알아보라는 연락을 할 뻔했다. 그렇게 며칠 생각한 끝에 그 댓글은 필자가 시켜서 간접적인 반박을 한 것으로 짐작하게 되었다. 혹독하지도 않고 비뚤어지지도 않은, 나름 멋진 독후감을 썼다고 생각하며 감사와 칭찬을 기대했었으므로 배신감을 느꼈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극찬은 평가가 아니다!

평가를 고깝게 여기면 세상을 놀라게 할 작가가 되기는 어렵다!(어쭙잖은 내 독후감을 읽고 이의를 제기한 작가는 아직까지는 없다!)

단칼에 세상을 놀라게 할 수는 없다!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수만 권의 책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만도 백여 권은 나오지 싶다. 그리고 아무리 할 일이 없다 해도, 아무리 부지런하다 해도, 아무도 그 책을 다 읽지 않는다. 매일 단 한 권씩은 읽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다음은 책이 많이 나온다는 얘기를 쓴 에세이의 한 부분이다.

 

 

4년 차에 문학 담당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부턴 책에게 묻는 것이 내 일이 되었다. 사람에게 묻는 것보다는 겁이 덜 났지만 모르는 채로도 써야 한다는 일의 속성은 여전했다. 매주 수백 권 남짓의 신간이 내 이름 앞으로 배달되어 왔는데 기사로 소개할 수 있는 책은 한두 권이었다. 어떤 책을 읽고 쓸지 선택하는 일은 결국 어떤 책을 읽지 않을지 선택하는 일이기도 했다. 시의성, 완성도, 대중성, 내 취향 따위가 선택의 기준이 됐지만 여전히 그것만으로 충분한지 알 수 없어서 나는 매일 낮, 책들 가운데서 씨름했다. 출판사가 작성한 보도자료를 공들여 읽고 저자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 책의 앞부분을 빠르게 훑고 나면 낮의 시간은 매몰차게 전부 흘렀다.

 

- 한소범(에세이) 「밤마다 새롭게 갱신되는 용기」 (『현대문학』 2025년 2월호)

 

 

그러니 세상이 뒤집어질 책이 나올 수가 없다.

그건 기적이기 때문이다.

기적이 자주 일어나면 기적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