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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재미없는 인생"

by 답설재 2022. 12. 21.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남들도 그렇다고 말하고 나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할 줄 아는 잡기雜技가 없고 이렇다 할 취미도 없다. 바둑이나 장기는 물론이고 그 흔한 화투나 카도놀이도 배우지 못했다.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으며 낚시나 테니스 같이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취미에 빠져본 적이 없고, 한 가지 물건을 모으는 수집가 취미도 없다. 취미를 묻는 신상명세서의 빈칸 앞에서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써넣을 말이 없다. 휴일을 위해 훌륭한 취미들을 가지고 인생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울 뿐이다.  책을 좋아하지만 그것을 과연 취미라고 불러도 되는지, 그랬다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것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서점에 들어가서 책 구경을 하고 있으면 며칠이라도 그렇게 지낼 수 있을 것 같고, 청계천 일대 뒷골목의 공구상들을 돌아다니며 잡다한 도구와 재료들을 뒤적거리는 것도 내게는 흥미로운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취미라기보다는 나의 일을 위한 것이다. 나의 본업, 작업실에 들어앉아서 무언가를 뚝딱거리며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지만, 그것을 나의 취미라고 할 수는 없다.

취미가 없기 때문에 휴일에도 나는 취미가 아닌 '일'밖에는 할 것이 없다.

(...)

음식의 맛에 관해서는 어디서나 일체 불평을 하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고 있으며, 몇 년 전부터는 몸에 나쁘다는 담배도 끊은 터이다. 무취미한 나의 인생……. 이제 여기서 커피만 마저 끊는다면 나는 먹고마시는 일에서도 아무런 취미가 없는 맹물 같은 인간이 될 것이다.

 

 

안규철의 《그 남자의 가방》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건 말해줄 수 없다.

(다만 안규철은 좋은 미술가다. 그건 확실하다!)

 

아, 말해줄 수 없는 그 이유를 생각하며 나는 또 쓴웃음을 지었다.

재미없는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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