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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이서수 소설 「몸과 여자들」

by 답설재 2022. 6. 14.

 

 

 

 이서수 소설 「몸과 여자들」

《현대문학》 2022년 3월호

 

 

 

저의 몸과 저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실로 부끄러운 고백이어서 저는 다 한 번밖에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가만히 들어주세요.

 

*

 

저는 1983년생입니다. 그런 탓에 이 사회가 여성의 몸에 얼마나 냉혹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지요. 물론 1959년생인 저의 어머니보다야 훨씬 나은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작금의 젊은 여성들을 볼 때마다 부조리한 억압과 불평등에 짓눌려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평생에 걸쳐 마른 몸으로 살았지만, 저의 몸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 역시 몸 때문에 트라우마랄까, 피해의식을 늘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것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다.

재미있게 읽었다. 끝까지 읽었다. 읽기 싫을 걸 참고 읽지 않고 읽고 싶어서 읽었다.

「몸과 여자들」

여자들 얘기인데 내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았다.

세상을 향한 반박, 좋은 절규.

이렇게 끝난다.

 

 

언니가 보낸 카드도 있었습니다. 펼쳐보니 이런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 환상의 조합. 우리는 몸과 정신 양쪽 다에게 기쁨을 줄 의무가 있어. 너의 말과 달리 우리에겐 그런 의무가 있어.

 

(……)

어쩌면 끝없이 혼란스러워질 의무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없이 생각하고 결론을 내릴 의무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없이 반박할 의무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없이 연결되어야 할 의무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의무가 끝나면, 삶도 함께 끝나는 걸까요.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삶은 시원치 않게 작동되는 환풍기 아래에서 천천히 말라갈 것이기에, 이제 저에게는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파삭 하고 무너진 뒤에 다시 태어나게 될지도 모르고요. 그럴 거라고 착각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제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