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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by 답설재 2021. 10. 7.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김대웅 편역, 아름다운날 2018

 

 

 

 

 

 

 

제우스의 후손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디세우스가 연합군 리더의 한 명으로 난공불락의 트로이 프리아모스 성을 10년 만에 함락시킨 뒤, 다시 10년 온갖 풍상, 고난을 다 겪고 귀환하여 아내 페넬로페의 청혼자들(계산해보니까 '보좌관' 빼고도 무려 110명)을 물리치고 다시 왕위에 복귀했다는 이야기.

이건 해피엔딩이고 권선징악이어서 따지고 보면 크건 작건 인간의 길이 다 이와 유사하다는 얘기는 성립될 수 없겠다.   

 

전라도 어디에서 오셨다는 염길환 선생님, 여느 선생님은 시험문제를 출제할 때나 사용하는 등사원지에 8절 4면 혹은 6면, 혹은 8면을 혼자 다 쓰시고 아름다운 감청색 잉크로 한 장 한 장 직접 인쇄하시는 학교신문에 이 '거창한' 얘기를 연재해주셨다.

토요일 오후, 고향에 가시지 않고 등사실에서 혼자 인쇄하셨는데 나는 점심 같은 건 생각지도 않고(그땐 으레 굶고 다녔지?) 그 인쇄가 끝나기를 기다렸고 선생님은 다음 월요일 날짜로 발행될 그 신문을 제일 먼저 나에게 보여 주셨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아, 그리운 선생님......

 

새벽의 여신이 장밋빛 손가락을 뻗쳐 동쪽에 모습을 드러낼 무렵, 텔레마코스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었다. 그는 어깨에 번쩍이는 검을 둘러메고 탄탄한 샌들을 발목에 맨 다음 길을 나섰다.

 

태양이 동쪽의 아름다운 물가로부터 우뚝 솟아올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불사의 신들을 위해, 그리고 어차피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 인간들을 위해 장엄하게 빛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호메르스(염길환 선생님의 "호머")는 곧잘 새로운 이야기를 이렇게 전개했다.

이번에 새로 읽으며 나는 그 옛날 벚나무 아래에서 그 연재를 읽던 시간을 떠올려보았다.

새벽의 여신은 왜 장밋빛 손가락을 뻗쳤을까?

태양은 왜 아름다운 물가에서 솟아올라 타오르는 걸까?

신들은 왜 죽지 않을까?

인간은 왜 어차피 죽는 걸까?

태양은 왜 어차피 죽을 인간들을 위해서도 장엄한 그 빛을 쏟아내는 걸까?

나는 호메르스의 생각들 하나하나가 다 궁금했었다.

 

나는 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땐 무턱대고 읽었을까?

나는 왜 그 황금기를 '소모'한 것일까?

 

재미있다.

인간들도 그렇고 신들도 꼭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합리적으로 움직이진 않는다.

그렇겠지?

권선징악이면 인간사도 신들의 일도 따질 게 없겠지? 세상만사가 다 조용해지겠지?

재미도 없겠지?옛날이나 지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