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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안녕!" "응, 오케이~"

by 답설재 2021. 5. 19.

 

 

 

저 녀석은 올봄에 1학년이 되었습니다.

저 아래 동네에서 혼자 등교합니다.

"안녕!"

"안녕!"

사뭇 간단한 인사를 나누다가 한 마디 보태보았습니다.

"잘 다녀와!"

뭐라고 웅얼거리는데 그 대답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에는 인사를 바꿔보았습니다.

"조심히 다녀와!"

"응! 오케이~"

'응'이라고? 그 참... 이상하다... 내 인상이 고약할 텐데 감히 '응'이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

 

"안녕!"

"응, 안녕!"

"조심해!"

"오케이~"

 

저 아이와 나 사이에는 구체적인 계약 같은 것이 없어서 서로 간에 의무나 권한 따위도 없습니다.

관계래야 혹 만나게 될 때 내가 녀석을 괴롭히지만 않으면 되는 것인데 인사하는 게 괴롭히는 일일 수도 있을지 몇 번 생각해봤고 저만큼 걸어가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몇 번 뒤돌아봐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만날 때 다른 어떤 일은 없을까? 약간 특별한 일이라면, 저 아이는 내가 마주 보며 그쪽으로 걸어가거나 말거나 길 가운데로 걸어오는 '아직은 새파란 아주머니'처럼 매너 없이 걷지 않습니다. 이 냉엄한 마스크 시대에...

나는 의무적으로 오른쪽으로 걷는데 초등학교 1학년인 저 아이도 당연하다는 듯 오른쪽으로 걸어서 우리는 언짢을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침나절의 산책길에서 저 아이는 그러니까 언제나 반갑고 기분 좋은 만남을 마련해 줍니다.

 

"안녕!"

내가 반가워서 두 손을 흔들면 저 아이도 두 손을 흔들어줍니다.

"안녕!"

('정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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