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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자연에 대한 경외심

by 답설재 2024. 4. 18.

스톤헨지(DAUM 백과사전에서)

 

 

 

 

'나'는 일본에서 활동 중인 이우환 화백이고 '루트'와 '에스라'는 그의 친구들이다.

 

 

루트가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거인이었던 걸까?"

나는 조금 생각한 뒤 말했다.

"그럴 리는 없지. 다만 지금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은 조금 더 자연의 에너지, 그 힘과 연이어 있는 존재였을 거라고 생각해."

"자연의 힘?"

"우리처럼 고립된 개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과 이어진 공동체의 힘이라고나 할까,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랄까, 신에 대한 신앙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

에스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괴력이 작용했다는 뜻이군."

"현대인은 공통된 정보와는 연결되어 있지만, 생각도 신체도 외부와 단절되어 있어서 자기 자신의 힘밖에 없는 게지."

"엄청난 힘을 잃고 말았네."

 

 

이우환의 에세이 「라스코동굴」(『현대문학』 2018년 10월호, 성혜경 역) 중에서 옮겼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 버렸다. 대단하다.

그렇지만 그 위대한 일을 한 인간들이 저 원시인들보다 초라해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마침내 지구를 망쳐놓고 어디 도망갈 데가 없나 살피는 한심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저 사진 속의 돌기둥처럼 보이는 멋진 돌 앞에서 망치와 정을 들고 선 조각가가 조금씩 조금씩 그 바위를 깨뜨려 작품을 만들다가 마침내 다 부숴버린 돌기둥의 잔해를 두고 손을 틀며 돌아서는 웹툰을 본 적이 있다.

 

이우환의 그 에세이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도 보였다.

 

 

인류는 원시시대 때부터 돌에 대한 다양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고인돌이나 멘히르를 비롯해 라스코나 알타미라의 어두운 암벽, 가지각색의 자연석이나 엄청난 석조물에 이르기까지 돌은 생명과 영혼, 죽음이 깃든 집이자 그 상징으로서 숭배를 받아왔다. 돌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요소를 전부 안다 한들, 그곳에 있는 돌과의 만남을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돌이 단단하고, 시간에 견디기 쉬운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돌이 가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감과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이 깊은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리라. 나는 실로 40여 년을 돌의 포로가 되어 다양한 돌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어가며 온 세계를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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