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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9년 만의 답글

by 답설재 2017. 1. 12.

 

  2008.08.27 15:14

 

 

  바뀐 연수교재로 바빠졌습니다. 새로운 내용에 관해 논문을 찾고 관련서적을 통해 정리하였습니다. 1시간 분량의 새로운 내용에 또 열흘을 매달렸습니다. 결국 제 공부를 한 것이었죠. 50분 분량의 이야기도 5분 정도로 정선해 들려주어야 할 역량을 갖출 법도 한데 늘 말이 많아집니다. 더러는 공감한 것 같고, 더러는 지루해 했습니다. 경쟁, 자율, 다양화를 부르짖는 교육 속에 이미 문화 권력으로 자리 잡은 영어교육에 대해 강사로 복무하는 것이 불편해졌습니다. 이제 그만 내 놓을 생각입니다(윤지관,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 당대, 2007). 이번 연수 중 허락 없이 교장선생님의 블러그를 소개하였습니다. 내용중에 「교수저널쓰기」와 관련하여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블러그라고 3반에 소개하고 「교과서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의 내용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점심먹고 다시 4반에 소개할 때 「쇼스타코비치, 왈츠」가 올라와서 놀랐습니다. 앞의 내용이 꽤 오랫동안 올라와 있어 그 주요한 내용을 짚어 가며 1,2반에 언급했는데 말입니다. 사실 4개 반에 똑 같은 내용 4차시를 하다보면 해야 할 말에 대한 정확한 계산이 필요해집니다. 간간히 보여 주시는 음악에 대한 조예에 쉽게 감응하지 못하는 문외한은 얼른 교과서.. 인식.. 필요성을 찾아 갔습니다.^^ 연수강사를 마무리하고 수업관련 보고서를 정리하니 방학은 벌써 중반에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살자. 아침에는 책을 읽고 오후에는 산을 찾았습니다. 2시간 정도의 아차산 등산(산책^^)은 참으로 유익하였습니다. 저녁에는 다시 책을 읽었습니다. 단순하지만 정제된 생활이라는 느낌에 개학으로 인해 흐름이 잠시 멈쳐지는 것이 아쉽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결승전조차도 보지 않는다고 아내는 국민성을 의심하고(국민성의 기원에 대한 내용이 어떤 책에 있었더라^^), 애국심 실종 등으로 비난하며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 당겨 보려 했지만 저는 새로 사귄 한 여인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사랑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 주변 인물들까지도 집적대고 있습니다. 예전에 교장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다치바나 다카시」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사고 싶은 책을 한 분야에 수십만 원씩 스스럼없이 사는 그의 능력이었습니다. 물론 전문가와의 대담을 준비하면서 동일한 수준의 지식을 갖추기 위한 그의 치열한 노력과 자료 하나 인용하는데 있어서의 엄격함이 3만권도 넘는 책을 소장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강사료로 그의 흉내를 한 번 내보았습니다. 이제 고백하겠습니다. 다카시의 흉내를 내도록한 여인의 정체를 말입니다. 예전부터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연구공간 수유+너머」라는 다소 긴 이름을 가진 지식인 공동체 소속 연구원들의 글을 접해 왔습니다. 인연의 끈을 예감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바 남은 방학 기간을 통째로 쏟아 부어도 후회치 않을 고전의 세계로 급속히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구축해 가고 있는 세계를 공감하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며, 지금은 연암(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그린비, 2004)을 만나고 있습니다. 쌓아 놓은 책도 몇 권 있으니 아직은 부자입니다.

 

  추신: 아십니까? 「다치바나 다카시」의 글에서 교장선생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을요.

어떤 내용인가를 물으신다면 답변해 드릴 수 있지만... 생각이 납니다. 작년 2학기 중간성취도 평가시 전학년 20과목, 문항수로 따지면 530문항을 밤새 검토하여 피바다(붉은 볼펜으로 검토한 내용)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참 그날은 출장까지 다녀오신 날이었죠. 돌려주신 시험지를 4시간이 넘게 다시 검토하면서(그냥 다시 읽어 보기) 들었던 오만가지 생각.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즐거웠습니다. 교장선생님. 그 유쾌한 시공간이 그립습니다. 너무 늦게 리플(사실은 편지)을 달아 사랑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었지만 저는 틀림없이 한 남자를 사랑합니다.

 

 

 

 

 

  2017.01.10 12:24                 

 

 

                   K 선생님!

  어처구니없다 하시겠지요. 당연합니다. 9년 만에 이 답글을 보시게 되었으니까요.
  아, 어쩌면 보실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성함을 클릭해봐도 연결이 되지 않는군요.
  이 글에 사진을 하나 넣고 싶어 하다가 선생님 댓글에 답을 하지 않은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큼 원인도 분명합니다.
  그때 저는 선생님 글을 읽고 제 마음을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간단히 답할 댓글이 아니라고 '구분'했고, 얼마 동안 이 글의 비중을 생각하다가 그만 잊고 만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물론, 내게 이런 면이 있었는가 싶어 할 수 있다면 지금 답을 하는 것은 선생님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분명하지만 저 자신에게는 그리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50분 분량을 5분으로 축약해야 하는 것은 우리 교육행정, 우리 교육의 폐단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쩌면 저들이 하는 이야기가 주제로는 마땅한 것이라면 그들의 5분간을 현장에서는 50분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어교육 강의를 하셨다니, 선생님께서는 무엇이든 강의를 하실 수 있지만,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일전에 교사 임용시험에서 영어회화를 심사한 교사의 말을 들어보았더니 요즘 응시생들은 모두 영어를 잘하더랍니다.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나라 교사들이 이만큼 노력하고 있는데도, 이만큼의 역량을 갖추어 교사가 되는데도 우리 교육은 결코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현상의 원인은 전적으로 교육행정에 있을 것입니다.

  방학 이야기도 하셨네요? 2008년의 여름방학이었고, 지금은 세월이 흘러 2017년 1월의 겨울방학 중이고요. 괜찮으시다면 한번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곧 승진 발령을 받으시게 되었으니까 축하를 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꼭 그렇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단순하지만 정제된 생활"…… 멋진 표현입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시겠지요. 그러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이제 와서 저도 실감합니다. 그런 걸 쓴 책도 허다한데 쓸데없는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허둥대기 십상인 것이 현실이고 그러면서도 그게 허접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기 일쑤니 까요.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당기시는 부인의 말씀을 지금도 '거역'하십니까? 그 일을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시는지……
  "그럼, 당신은?"

  저야 끌어당기지 않아도 그 앞을 지킵니다. 정말 고역일 때가 흔하지만, 아니 대부분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도 좋은 시간 아닐까 싶어서요. 다 보고 나서 잠들기 전 30분 정도? 책을 펼쳤다가 덮어버리죠. ㅎㅎ~

  9년……
  하루하루는 이렇게 가지만 언젠가 싶게 가버렸습니다. 9년…… 어쩌면 엄청난 세월입니다.
  많은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책은 얼마나 더 쌓아놓으셨습니까? 얼마나 많이 읽으셨습니까?
  그 세월에 대하여 그 두 가지가 특히 궁금해집니다. 감추어두신 보검처럼 느껴집니다.
  돈과 권력은 가진 사람을 배반할 때가 있지만, 공부와 독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걸 저는 바보처럼 '장담'하며 살아왔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출제하신 아이들 시험문제를 검토한 일(요즘도 그런 정기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는지는 의문이지만)에 대한 K 선생님의 "즐거웠다"는 평가는, 그 이전 학교 행정실장으로부터도 들었던 칭찬이었습니다.(그분은 "교장선생님, 감동입니다!" 했는데 지금은 미국에 건너가 살고 있습니다.) K 선생님이나 그 행정실장과 달리 다른 이들은 교장이 그런 것 가지고도 교사들을 괴롭힌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 학교에서도 엉뚱하게 행정실장만 놀라워하고 칭찬했던 것처럼…….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선생님 같은 분도 있었으니까요. ^^

  K 선생님!
  저는 한때 선생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선생님을 그리워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편안하시고, 가슴 벅찬 나날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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