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제도 비판은 허구인가
"대학입시제도 바뀌지 않는 한 미래 없어요." 어느 일간지의 무역협회장 인터뷰 기사 제목이다. 특이한 지적은 아니다. 일반국민들이나 교육자들이나 대체로 수긍하는 관점이다. 사실은 그것이 우리 교육, 우리 대입제도의 현주소다. 그러므로 그 제도를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교육과학기술부로서는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다.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주 바꿔왔고, 현재도 입학사정관제의 적용, 수능 유형, 각 대학별 전형은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왜 그대로 두느냐”고 하는 건, 그 정도로는 우리 교육의 병폐가 치유될 수 없다는 비판이다. 말하자면 현행 수능제도를 존속시키는 한, 배 안에 앉아서 물이 새는 그 배를 부분적으로 수리하자는 것과 같아서 변화의 구색은 갖추어지고 있지만 학교교육의 본질적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교육의 실상을 이야기하다가 흔히 대입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마무리하고 만다. 좀 강조하면, 초·중등교육에 관한 한 거의 모든 어려움을 대입제도에 연계하여 이야기한다. 가령 교사의 일방적 설명을 경청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구태의연한 수업이라고 비판하면 대학입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대답한다.
수업이란 교사의 강의를 듣는 것, 그러므로 질문을 하기보다 설명을 잘 들어야 하는 것,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시험점수가 높다는 것, 시험이란 정답을 잘 고르는 것, 수능성적이 좋은 대학 입학에 직결된다는 것, 가령 바칼로레아처럼 "꿈은 필요한가?"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와 같은, 사고력·창의력·독서이력을 묻는 주제에 대해 논리적 설명, 논리적 글쓰기는 유보하고 일단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최선이고, 좋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거의 필수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 우리 교육이다.
주입식 일제학습, 강의청취학습, 암기학습으로 요약할 수 있는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한 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와 학교교육 간에 차이가 없어서 학생들은 학교교육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기회만 있으면 학원을 기웃거린다.
이런 문제점을 수긍하는 행정가나 학자는 많다. 그리고 그 폐단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혹 현행 대입제도의 배경에 주입식 교육을 고수(固守)하려는 막강한 세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도 대학입시로 인한 초·중등 교육의 어려움을 즐길 리야 없지만 적어도 모르는 척하는 것은 아닐까?
초·중등교육을 단지 대학교육 준비단계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사고력·창의력·문제해결력 함양은 대학에서나 가능하고, 대학교육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건 아닐까?
자신들이 즐기는 주입식 암기교육 외의 다른 유용한 교육방법을 인정해주고 싶지 않은 건 아닐까?
주입식 교육은 전 세계적으로 30여 년 전에 이미 앨빈 토플러(1980, ‘제3의 물결’)의 전면적 공격(“시간엄수·복종·기계적인 반복”)을 받아 쓰러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통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런 의구심이 허구가 아니라면 왜 이처럼 지적과 비판만 되풀이되는 것일까?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입제도가 초·중등교육을 지배하는 이 마땅찮은 고리를 끊어버려야 한다. 누가 그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가? 당연히 교육과학기술부장관과 교육감들이 앞장서야 한다.
그들의 용기와 지혜, 협력이 필요하다. 대학 쪽에서 먼저 나서서 고쳐줄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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