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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어느 사형수가 세상의 선생님들께 남긴 편지

by 답설재 2011. 12. 2.

교사는 모든 학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사람만 따뜻하게 대해서도, 한 사람만 차갑게 대해서도 안 됩니다.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도 똑같이 사랑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눈에 띄지 않던 학생 중에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다정함을 언제까지나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단 한 번의 칭찬이 평생 기억할 수 있는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때때로 인생의 가치를 되찾게 만든다. 그것이 죽음이 일으키는 기적이 아닐까?

1967년 11월 2일, 일본 야마나시 현山梨縣의 고스게小管형무소에서 한 남성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 남성의 이름은 아키토島秋人, 향년 33세였다. 그는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주위 사람들의 냉대에 성격이 비뚤어져 비행 청소년으로 자랐다. 어느 비 오는 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그는 시골이 한 농가에 침입해 단돈 2000엔을 뺏으려다 집주인을 죽이고 체포되어 사형수가 되었다.

인생의 밑바닥을 헤매며 살아온 그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한 추억이 있었다. 그것은 미술 선생님의 칭찬이었다. 감옥에 들어간 후 그는 무언가 굳을 결심을 한 듯 미술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림과 함께 단가가 적힌 편지를 답장으로 받았다. 이것이 격려가 되어 그는 단가를 짓기 시작했고 잡지사에 투고했다. 자신의 마음을 꿰뚫는 그의 눈이 맑아질수록 더 뛰어난 노래들이 태어났다. 어느새 그의 노래는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키게 되었다.

 

이리도 맑은 마음 있을 줄 모르고

죽음이 찾아오네, 이 밤의 온기

 

사형 전날 밤이다. 너무나 어리석은 인생을 내일 아침 사죄하면서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은 서글프지만 밤기운을 따뜻하게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기쁘다. ……(후략)……

 

옥중에서 그는 좋은 사람들과 알게 되었고 교육을 받으며 감화되어 그 자신도 놀랄 정도의 인간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교육의 중요성을 통감하며 (위와 같은) 편지를 남겼다.

 

                                                              오츠 슈이치 지음·박선영 옮김, 『삶의 마지막에 마주치는 10가지 질문』에서.

 

 

 

 

지난 2009년 5월 15일 쓴 학교장 칼럼 「스승의 날 Ⅱ(살아있을 때라도 사랑해주자)」라는 글이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했던 녀석이 가난한 가정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가 비명에 저세상으로 갔다는, 제게는 '정말로' '정말로' 가슴아픈 얘기입니다.

저도 그곳에 가면 제 엄마부터 만나보고 녀석이 잘 있는지 안부를 물어 녀석이 만나줄 수 있다 하면 얼른 만나볼 작정입니다. 그나저나 녀석은 깨끗한 어느 곳에서 아무 걱정없는 천상의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고, 저는 잘못한 일이 많은데다가 일요일에는 평생 빈둥거리기만 했으니까 그런 만남은 기대조차 하지 말아야 할 일인 줄 너무나 잘 압니다. 다 욕심입니다.

 

그 얘기의 제목을 「살아 있을 때라도 사랑해주자」라고 한 것은, 지금이 제 어릴 적처럼 굶주림이 심하고 속수무책인 질병들 때문에 아동 사망률이 높아서 아이들이 걸핏하면 죽어 나가니까 몇 년 못사는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사랑을 베풀자는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제 주제에 그런 얘기가 가능하겠습니까.

 

그럼 무슨 얘기냐 하면 선생님들은 무조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학업성취도평가 점수를 높여주기 전에, 심지어 한글을 좀 가르치고 숫자를 익혀 계산을 할 줄 알게 해주기 전에 '선생님은 나를 사랑해주시는구나' 하는 생각부터 갖게 해서 그 아이들도 남을 사랑하는 마음부터 갖게 해주는 것이 선생님들의 할 일이라는 얘기입니다.

 

 

 

 

「1등급 학생들은 스스로도 잘해낼 수 있네」(내가 만난 세상, 2011.5.9.)라는 글도 사실은 그런 내용의 글입니다. 오늘날 선생님들이 수업하시는 모습을 살펴보면 자칫하면 '똑똑하고' '목소리 큰' 아이들 중심으로 수업을 이끌어가기 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좀 극단적인 제 생각을 말한다면 목소리가 작거나 영리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 같은 아이도 참여하는, 뭔가를 발표하게 해주는 그런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리한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하면 편하고 시원합니다. '내가 수업을 잘 하는구나' 그렇게 착각하기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선생님께서 버려두어도 '저절로' 공부할 수 있는 아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정작 선생님께서 눈길을 멈추어야 할 아이는 바로 그 영리한 구석을 찾기 어려운 아이, 목소리가 작아서 말할 기회조차 주기 싫은 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저 사형수가 우리에게 남긴 편지를 읽고 생각난 이야기들입니다.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당혹스러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아이는 무엇으로도 말릴 방법이 없는 말썽꾸러기였습니다. 그런 녀석이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 그걸 그림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를 장난질한 도화지를 칠판에 걸어 놓고 장차 훌륭한 화가가 될 것 같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녀석이 서른 초반쯤이었는지 화가가 되었다면서 어느 화랑 전시회 안내장을 보내온 것입니다.

그런데 신문이나 방송에서 그 녀석이 유명해졌다는 기사를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살아오면서 그런 식으로 역사왕, 그림왕, 발명가, 무슨 선수, 무슨 작가 같은 닉네임을 셀 수 없이 붙여주었는데 정작 아직 유명해진 인물을 찾기가 어려우니 참 딱한 노릇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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