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버리기4 버리기 - 책 버리기 책을 버리며 산다. 전에는 한꺼번에 수백 권씩이었는데 그간 많이 줄어들어 지금은 조금씩 조금씩 버린다. 누가 볼까 봐 주변을 살피지만 버리고 나면 개운하다. 책 몇 권을 버렸는데 매번 무슨 큰일을 치른 느낌이 든다. 책을 모으며 살던 때가 있었다. 늘어난 책을 보며 흐뭇해했다. 사람들이 보고 놀라면 자랑스러웠지만 혼자서도 그랬다. 삶의 보람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그러다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버리는 건 처음이 어렵지 나중엔 어려울 것도 없었다. 자서전 버리기는 예외다. 자서전은 책 중에서도 시원찮은 것들인데도 버리고 나면 개운하지 않다. 본인이 "지금도 갖고 있겠지요?" 할까 봐 켕긴다. 아직은 묻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긴 하다. 죽기 전까지 그렇게 물어오는 사례가 없어야 하는데 모르겠다. 극히 한정된 .. 2024. 12. 5. 할아버지의 사전 크고 누런 설명서를 식탁 위에 펼쳐 놓았다. 루실이 의자에 무릎을 꿇은 채 첫 번째 단계를 읽기 위해 식탁 너머로 몸을 기울였다. "사전이 필요하겠어." 루실의 말에 내가 거실 책장으로 사전을 가지러 갔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낡은 책들 가운데 하나로, 이제까지 한 번도 들춰 본 적이 없었다."우선 옷감을 펼쳐 놓는다.” 루실이 설명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옷본 전체에 핀을 꽂은 후 그것을 잘라 낸다. ‘핑킹 가위 좀 찾아봐.’” 사전의 P 부분을 펼쳤다. 그랬더니 그 안에 말려 놓은 팬지꽃(pansy)나 다섯 송이나 들어 있었다. 하나는 노랗고 또 하나는 검푸르고 세 번째는 적갈색, 네 번째는 보라색, 마지막 송이는 담황색이었다. 팬지꽃은 판판하면서도 뻣뻣하게 말라 있었는데, 나비 날개처럼 굳었.. 2020. 1. 26. 책 버리기 책 버리기는 '사건'입니다. 잊혀도 상처는 남습니다. 함께하기가 어려워 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손수레로 세 차례 실어냈습니다. "어허! 죽을 때 가지고 가시지 왜 자꾸 버리세요?" 재활용품을 정리하던 경비원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누가 듣고 있지 않을까 싶어 얼른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저 꼴에 책을 읽는단 말이지?' 단 한 사람이라도 보게 되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 뻔합니다. 지난주에 내다버릴 땐 아뭇소리 않고 바라보기만 했었습니다. 순간 나도 덩달아 외쳤습니다. "벅차서요! 남아 있는 것도 다 가져가지 못하겠는걸요!" 정말 그걸 다 갖고 가라면 그 먼길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강을 건널 땐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경비원은 큰 소리로 웃기만 했습니다. "어~ .. 2019. 11. 7. 독서 메모 (1997) "안 돼요. 깨끗하게 해야지요. 당신은 북 세이버(book saver)니까, 책에 먼지가 끼는 걸 원하지 않을 거잖아요. 당신은 북 세이버 맞죠?" 북 세이버. 크로아티아에서는 그와 같은 사람들을 그렇게 부를까? 북 세이버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책이 망각 속으로 빠지지 않게 하는 사람? 읽지 않는 책에 집착하는 사람? 그의 서재는 마루에서 천장까지 책들로 빼곡하다. 다시는 펼치지 않을 책들이다. 읽을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다. 소설 『슬로우 맨』의 한 장면입니다(존 쿳시 J. M. Coetzee / 왕은철 옮김 《슬로우 맨 SLOW MAN》 들녘 2009, 65.) '이 사람도 그렇구나.'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오랫동안 책을 모으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왔고, '간간히' '한꺼번에' '많이'.. 2018. 1. 2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