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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버리기3

할아버지의 사전 할아버지의 사전 크고 누런 설명서를 식탁 위에 펼쳐 놓았다. 루실이 의자에 무릎을 꿇은 채 첫 번째 단계를 읽기 위해 식탁 너머로 몸을 기울였다. "사전이 필요하겠어." 루실의 말에 내가 거실 책장으로 사전을 가지러 갔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낡은 책들 가운데 하나로, 이제까지 한 번.. 2020. 1. 26.
책 버리기 책 버리기는 '사건'입니다. 잊혀도 상처는 남습니다. 함께하기가 어려워 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손수레로 세 차례 실어냈습니다. "어허! 죽을 때 가지고 가시지 왜 자꾸 버리세요?" 재활용품을 정리하던 경비원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누가 듣고 있지 않을까 싶어 얼른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저 꼴에 책을 읽는단 말이지?' 단 한 사람이라도 보게 되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 뻔합니다. 지난주에 내다버릴 땐 아뭇소리 않고 바라보기만 했었습니다. 순간 나도 덩달아 외쳤습니다. "벅차서요! 남아 있는 것도 다 가져가지 못하겠는걸요!" 정말 그걸 다 갖고 가라면 그 먼길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강을 건널 땐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경비원은 큰 소리로 웃기만 했습니다. "어~ .. 2019. 11. 7.
독서 메모 (1997) "안 돼요. 깨끗하게 해야지요. 당신은 북 세이버(book saver)니까, 책에 먼지가 끼는 걸 원하지 않을 거잖아요. 당신은 북 세이버 맞죠?" 북 세이버. 크로아티아에서는 그와 같은 사람들을 그렇게 부를까? 북 세이버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책이 망각 속으로 빠지지 않게 하는 사람? 읽지 않는 책에 집착하는 사람? 그의 서재는 마루에서 천장까지 책들로 빼곡하다. 다시는 펼치지 않을 책들이다. 읽을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다. 소설 『슬로우 맨』의 한 장면입니다(존 쿳시 J. M. Coetzee / 왕은철 옮김 《슬로우 맨 SLOW MAN》 들녘 2009, 65.) '이 사람도 그렇구나.'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오랫동안 책을 모으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왔고, '간간히' '한꺼번에' '많이'.. 2018.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