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직박구리2

새의 뼈 몇 개 달린 블루베리를 직박구리에게 빼앗기고 나서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어설픈 방조망을 설치했더니 영리한 그 녀석들이 그 아래로 기어들어가 새로 익은 열매들을 또 실컷 따먹고 이번에는 그 방조망을 헤치고 나오질 못해 기진맥진할 때까지 퍼드덕거리다가 지쳐 쓰러진 걸 보게 되었다. 직박구리들은 블루베리뿐만 아니라 벗지, 살구, 앵두, 대추, 보리수 열매... 달착지근한 건 뭐든 남겨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심은 나무 열매는 내 계산으로는 내 것이긴 하지만 그들에게 물어보지 않았으니 내 계산만으로 일방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 않겠나 싶기도 했다. 그러니 그 녀석이 지쳐 쓰러졌거나 말거나 그냥 둘 수는 없으므로 일단 살려 놓고 보자 싶어서 방조망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더니 그럴 기력은 남아 있었던지 제.. 2023. 12. 25.
직박구리에게 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희들 존재조차 몰랐었어. 관심이 없었던 거지. 아직 날이 채 밝지도 않은 새벽부터 꽥꽥 쫵쫵 악착같이 떠들어대는 녀석들, '행동대장'이 꽥꽥거리며 지휘하는 대로 무리를 지어 다니며 달콤한 열매가 달린 나무를 점령하는 것들, 익은 열매를 거들낸 다음엔 익지 않은 것조차 감미만 돌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우는 것들, 방조망 아래로 기어들어가서라도 실컷 따먹고는 나오지를 못해 푸드덕거리다가 꺼내주면 고마워하지도 않고 달아나는 것들, 꺼내줄 사람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말라죽어버리고 날개와 깃털, 해골만 남기는 것들, 이쪽저쪽으로 휙 휙 바람을 일으키며 위협 비상을 하는 것들, 이(李) 상무는 산까치로 부르지만 뭘로 봐도 직박구리가 분명한 것들, 뭔가 좋아할 만한 구석을 가지고 있겠지.. 2023.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