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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주검3

혼자 가는 길 여기는 산으로 둘러싸인 곳입니다. 동쪽으로는 마당 건너편 계곡이 숲으로 이어집니다. 새들의 희한한 대화를 들을 수 있고 모기 같은 벌레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저녁을 먹고 현관을 나서는데 때아닌 매미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둠이 짙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워낙 조용하니까 내 이명(耳鳴)이 또 장난을 하나?' 멈춰 서서 작정하고 들어 보았습니다. 날개로 땅을 쓰는 소리도 함께 들립니다. 아! 소리는 바로 발밑에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얼른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켰습니다. 이런! 날개를 퍼덕이며 매미가 울고 있습니다. 구월 초사흘, 한로(寒露)에 매미라니! 하루하루 기온이 떨어져 그에게는 치명적일 것입니다. '저 숲으로부터 매미소리가 들려온 것이 칠월이라면 팔월 한 달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다가 여기를 찾.. 2021. 10. 13.
토마스 만 『마의 산』 서글픔을 느끼게 한 책입니다. 939쪽이나 되었습니다. 저 책을 만만하게 펼치고 앉아 있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이 유명한 책을 찾게 된 것은 『카뮈를 추억하며』 때문이었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디노 부자티의 희곡 「흥미로운 증례」**를 번역해서 연출했다. 그는 더 강한 활력을 주기 위해 작품의 길이를 줄였다. 이 희곡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러한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 보여준다. 환자들이 병원 창문을 통해 건강한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환자들에게는 이들이 낯설게 보인다. 두 진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각 진영에는 다른 진영에 대한 완전한 이해 불가능성이 지배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는 『마의 산』의 요양소 거주자들이 경험하는 그 .. 2013. 8. 22.
「死者의 書」 죽어 있다는 건 배에 타고 있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또 살이 물러지고 새로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달리 할일도 없다. 메리 로취라는 사람은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 스티프 STIFF』(파라북스, 2004, 권루시안 옮김, 9쪽)에서 주검 혹은 죽음 이후의 상황을 위와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짤막한 문장에서 "누워서 지낸다"느니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느니 "새로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느니 "할일도 없다"느니 어쩌고 하며 겉으로는 『죽음 이후의 삶』이라고 한 책의 제목에서처럼 주검에 대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를 따듯한 눈길로 바라보듯 했지만, 사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하게, 차갑게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2012.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