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4 재숙이네 채소밭 "쌤, 잘 계시나요?" 어제 오후에 재숙이가 전화를 했다. 정초 인사였다.재숙이는 짐작으로 60세? 61세? 딸 둘을 결혼시켜 손주들을 보았다. 막내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다.초등학교 6학년 다닐 땐 못 먹어서 그랬겠지? 호리호리하고 도무지 말수도 없고 빤히 내 표정만 살폈다. "재숙이구나!"연휴라서 남편과 함께 채소밭에 나왔단다."이 추운 날 채소밭에는 왜?""쌤, 여긴 겨울에도 농사지어요.""허, 그래?"재숙이네는 남해의 섬에 산다. 날씨와 겨울채소 가꾸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나는 재숙이의 설명을 들었다. "손주들은 재숙이 닮았겠지?""쌤, 저 닮으면 안 되죠! 공부도 제일 못했는데..."('그건 그랬지.')"넌 일 나가시는 엄마 대신 동생들 보느라고 공부를 할 시간이 도통 없었잖아." 그.. 2025. 1. 31. 기이하게 된 내 판단력 우리 초등 동기생 세 명은 A-4에 배정되어 있었다.뭐든 얘기해도 좋은 사이지만 주고받은 얘기들을 각자 자신의 아내에게 전하고 안 하는 건 알 수가 없다.C와 C' 둘 다 아내와 다른 방에서 잔다고 했다. 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나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그 얘기를 전하지 않았다. 쓸데없기 때문이었다).나도 그들에게 그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었다.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 논평하지 않았고 즐거워하거나 서글퍼하지 않았고 울거나 웃지도 않았다. 오늘도 C가 주로 얘기했고, 나는 적극적으로 들어주었고, C'는 관심 갖고 듣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가 없었다. 주변이 소란스러운 데다가 C의 음성은 요즘 더욱 탁해져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짐작으로 대충 듣지만 C'는 평생 한결같이 그렇게 들었다.. 2025. 1. 26. 개망초 향기 "요즘도 많이 바쁘죠?" 그렇게 물으면 되겠지, 생각하며 며칠을 지냈다. 누구에게든 이쪽에서 먼저 전화를 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더니 이젠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전화가 왔네?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면 수다가 된다는 걸 염두에 두며 대체로 묻는 것에만 대답했다. 너무 서둘러 끊었나? 섭섭해할까 싶어서 개망초 사진을 보내주었다. 답이 없다. ... 바쁘긴 바쁜가 보다. 밤 9시 24분, 잊고 있었는데 답이 왔다. 다섯 시간 만이었다. 저쪽 : 꿀 냄새만 나는 게 아닌걸요~ 개 망할 풀 왜 이리 이뻐요!? 나 : 밭 임자가 의사인데 많이 바쁘겠지요, 지난해 심은 대추나무가 다 죽어 그 혼이 개망초꽃으로 피어나서 그래요 ^^ 저쪽 : 선생님, 눈물 나려고 해요 ㅠㅠ 나 : 아! 이런!!! .. 2023. 7. 4. 감기 걸려 목이 아픈 날 "감기 걸렸다며?" "응." "먼지가 많아서 조심해야 해." "응?" "조심해야 한다고―." "응." "밥도 많이 먹고―." "응." "밖에는 먼지가 많으니까……" "응?" "바람 속에 먼지가 많은 날이니까 답답해도 집에 있어야 한대." "응." "병원 가야지?" "응." "의사 선생님이 약 먹으라고 하거든 잘 먹어야 해?" "응." "많이 보고 싶어. 응?" "응." "그럼, 끊을게―." "응." 전철역에서 환승을 하러 걸어가며 전화를 했습니다. "응?" "응" 하는 것만 듣고 끝났지만, 이 삶에도 경이로움이 있다는 사실이 또한 경이로웠습니다. 2015. 2. 2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