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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인간의 조건3

내 눈물 아무리 딴생각을 하려고 해도 기가 막히다는 말만으로는 너무나 부족한 일들이 떠오르고 떠오르고 떠오르고 더러 외롭고 허전하고 우울하고 고독하고 적막하고 더러 얼른 마치고 갈 수 있으면 싶고 그런데도 나는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게 되었다. 눈물이 없으면 이게 인간인가? 내가 지금 인간인가? 인간의 조건은 소나 개처럼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아는 게 아닐까? 눈물도 모르게 된 나는 인간인가? 2023. 3. 8.
고미카와 준페이 《인간의 조건》 고미카와 준페이 대하소설 《인간의 조건》 유창위 옮김, 글사랑 1993 언제까지 걸어도 끝이 없다. 둘이서 걷는 길이란 그런 법이다. 이런저런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긴요한 문제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이야기하고 싶으면서도 피하고 있다. 초저녁 어둠이 밀려오는 가운데 솜 같은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춥지는 않았다. 만주에서는 이런 눈은 흔하지 않다. 흔히 모래알처럼 사락사락하며 바람에 날려 살갗을 자극한다. 그러나 지금은 가볍고 부드럽게 감싸는 것만 같았다. 거리 모퉁이에서 두 사람은 발길을 멈추었다. 인적은 드물었다. 창턱에 눈이 쌓이기 시작한 창문마다 불빛이 따뜻하게 새어나오고 여기서부터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나는 그냥 이대로 갈까요?" 미치코(美千子)가 생각과는 반대되는 말.. 2016. 7. 8.
프란츠 카프카 『변신』 프란츠 카프카 『변신·시골의사』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9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角質)로 나뉘어진 불룩한 갈색 배가 보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그의 다른 부분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 맥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찌된 셈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그의 방, 다만 지나치게 비좁다 싶을 뿐 제대로 된 사람이 사는 방이 낯익은 네 벽에 둘러싸여 조용히 거기 있었다. 『변신』의 처음 부분이다. 외판원 '잠.. 2012.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