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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이재무2

「목욕탕 수건」 목욕탕 수건 이재무 얼마나 많은 몸뚱어리를 다녀온 면수건인가 누군가의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와 등짝과 발바닥을 닦았을 면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얼굴을 닦는다 내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와 등짝과 발바닥을 닦은 이 면수건으로 누군가는 지금의 나처럼 언젠가 머리를 털고 얼굴을 닦을 것이다 목욕탕 면수건처럼 사람들의 속살을 구석구석 살갑게 만나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면수건처럼 추억이 많은 존재도 없을 것이다 면수건처럼 평등을 사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닦고 나면 무참하게 버려지는 것들이 함부로 구겨진 채 통에 한가득 쌓여 있다 ――――――――――――――――――――――――――――――――――――――― 이재무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1983년 『삶의문학』 등단. 시집 『벌초』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몸에 피는 꽃』 .. 2014. 9. 14.
이재무 「꽃그늘」 꽃그늘 이재무 꽃그늘 속으로 세상의 소음에 다친 영혼 한 마리 자벌레로 기어갑니다 아, 고요한 나라에서 곤한 잠을 잡니다 꽃그늘에 밤이 오고 달 뜨고 그리하여 한 나라가 사라져갈 때 밤눈 밝은 밤새에 들켜 그의 한 끼 식사가 되어도 좋습니다 꽃그늘 속으로 바람이 불고 시간의 물방울 천천히 해찰하며 흘러갑니다 이재무 시인의 이 詩는 상봉역에 내려가 면목동 방향 중간쯤에 서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각자 저런 자벌레다, 우리의 영혼도 저런 자벌레의 영혼일 것이다, 그런 얘기겠죠. 시인이 그렇다면 당연히 그런 거죠. 어쩔 수 없는 거죠. 자벌레라면 싫다, 밤새의 밥이 되는 건 죽어도 싫다, 그렇게 말하면 웃기는 거죠. 더구나 세상의 소음에 다쳐 꽃그늘 속으로 들어갔으니까요. 더구나 천천히 해찰하며 가도 된다.. 2011.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