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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이명4

가을엽서 : 내 이명(耳鳴)은 스테레오 18일 오후, 저 숲을 지나는 바람은 스산했습니다. 매마른 가랑잎들이 온 거리를 뒹구는 듯 했고 그 바람들이 두런거리며 귀가를 서두르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다 떠나버려서 텅 빈 초겨울 저녁 같았습니다. 8월 7일이 입추였으니까 사십일만에 가을을 실감한 것입니다. 저 길을 서둘렀습니다. 그 저녁에 올해 처음으로 감기에 걸렸고 며칠 앓으며 지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가기가 싫어서 판피린만 부지런히 마셨습니다. 머리 안쪽에서 기계 돌아가는 듯한 이명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은지 이십 년은 되었을 것입니다. 이 가을에 내 이명은 스테레오 타입으로 변했습니다. 한쪽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직선형(直線形)으로 들리고 다른 쪽에서는 파선(波線 물결선) 형태의 이명이 그 직선형과 보조를 맞춥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2020. 9. 26.
이명(耳鳴)만은 이순(耳順) Ⅰ 이명(耳鳴)과 함께 지냅니다. 한여름 말매미 우는 소리 혹은 공장에서 강철 자르는 기계음 같은 게 사시사철 들리는 귀지만, 다른 소리도 그런대로 잘 들리는 편이어서 별 무리는 없습니다. 이명(耳鳴)이라고는 하지만 이 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귀가 내게 전해줄 뿐인데 나는 그걸 귀 탓으로 돌려서 "이명" "이명"하는 것이겠지요. 기력이 달리거나 조용할 때는 그 소리가 온통 진동을 해서 머릿속을 휘젓습니다. 가령 열두 시가 가까워 자리에 누우면 벽시계 소리와 맞먹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 소리를 벗삼아 그날 있었던 일이나 지나온 거리 같은 걸 생각해내고 그리움을 느끼며 잠이 듭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요란을 떨어도 다행히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 2016. 1. 27.
다행! 내 이명(耳鳴) 이명(耳鳴)이란 귀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아주 쉬운 낱말이지만 경험이 없을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이라면 '뭐 그런 게 있나?' 할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에게는――그렇다고 내가 뭐 '특별한 사람'이란 뜻은 아니지만―― 그 이명이 예를 들어 귀에 충격이 가해졌을 때라든가, 병이 나서 몸이 허약해졌을 때라든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특별한 때'에는 혹 들릴 가능성이 있지만, 나와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특별한 때'에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사시사철, 언제나, 늘, 그러니까 평생 그 소리가 들리고, '보통사람들'과 정반대로 '아주 특별할 때' 그러니까 너무나 즐거울 때라든가, 왁자지껄 정신없이 떠들며 노는 짧은 한순간에는 혹 그 소리를 느끼지 못하고 지냅니다. 그렇다고 그 소리가 멈추는 것은 아니고 느끼지 못.. 2013. 8. 26.
이명(耳鳴)은 내 친구 '이명'을 아십니까? 귀에서 여름 한낮 매미 우는 소리 혹은 기계음, 혹은 그 두 가지가 한꺼번에 "영원히(!)" 들리는 현상. "쐐~쐐~쐐~쐐~쐐~쐐~쐐~쐐~쐐~" 혹은 "찌이잉───────────" 혹은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들립니다. 나는 이명을 앓고 있습니다. "앓고 있다"고 하는 것은, 그것도 질병의 한 종류라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오래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대충이라도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병원에 가면, 가령 독감이 걸렸다든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든가 하여간 대수롭지 않은 일로 갔다 하더라도 일단 "저는 이명이 들리는데요……"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마치 "옛날 옛적 어느 나라에……"처럼. 그게 무슨 자랑거리는 아닌 게 분명하지만, 아무래도 진단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는 판단 .. 2012.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