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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이기성2

「잿빛」 잿 빛 이기성 잿빛, 생각하면 재의 마을이 떠올라요. 그 마을엔 잿빛 여자들이 살았어요. 여자들은 커다란 드럼통에 시멘트를 반죽해서 벽돌을 만들었어요. 깨진 창문에 탁자에 낡은 접시에 잿빛이 내려앉고 하얀 팔꿈치에도 눈꺼풀에도 수북이 쌓였어요. 밤이나 낮이나 아기들은 재를 뱉어내며 울었어요. 잿빛에 대해서 생각하면, 그건 참 멀군요. 잿빛은 구름보다는 바닥에 가깝기 때문일까요? 그러니 누가 알겠어요? 사라진 재의 아이를. 친구들아, 나는 자라서 재의 아이가 되었단다. 벽돌 속에서 소리쳤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나는 거대한 반죽통 속에서 천천히 잿빛이 되었어요. ............................................................................ 2017. 10. 16.
이기성 「살인자의 시집」 살인자의 시집 이기성 안녕 프랑수아, 당신이 보냈다는 시집을 기다렸어요. 오늘도 시는 도착하지 않았어요. 그사이에 나는 이사를 했고, 킁킁거리는 이웃들은 나의 우편함에 관심이 많아요. 프랑수아, 당신은 먼 나라의 시인이고, 나는 당신의 말을 몰라요. 그래도 당신의 시가 내게 도착했다면 나는 기뻤을 거예요. 모르는 나라의 말로 쓴 시가 나를 기쁘게 하다니, 놀랄 것도 같았어요. 프랑수아, 당신의 시집은 어디로 갔을까요? 당신의 혀에서 솟아난 말은 어디로 흘러갔을까요? 당신의 시가 밤하늘에서 한 글자씩 흩어져 내리는 꿈을 꾸어요. 하얀 말들이 창문에 쌓이고, 그것은 눈이 내리는 풍경보다 아름다울 것 같아요. 프랑수아, 나는 아침에도 기다리고 밤에도 기다렸어요. 어쩌면 당신의 시에서는 살인자가 눈 속에 피 묻.. 2017.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