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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영원4

지도 위에서 길을 잃어 지도를 보다가 '여기가 어디지? 내가 지금 어디를 헤매는 것일까?' 하고 당황할 때가 있다. 지리학을 공부해서 중등 사회과(지리) 교사 자격증을 받았는데도, 그러니까 지도학 강의를 몇 강좌나 이수했는데도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지도 위를 헤매게 된다. 눈을 따라 마음도 길을 잃는다. 어제저녁에는 문득 오래전에 살았던 곳이 생각났고, 거기에서 속절없이 헤어진 사람이 갔다는 곳을 지도에서 찾아보았다. 당시에는 멀리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행정구역으로는 멀지 몰라도 거리상으로는 그리 먼 곳도 아니었다. 영토가 작은 나라이니 어디인들 그리 멀다고 할 것도 없다. 그러다가 나는 지도 위에서 방향 감각을 잃어서 그때 살았던 도시도, 그 사람이 떠나간 곳도, 심지어 지금 내가 사는 곳도 찾지 못하고 허둥대고.. 2022. 9. 25.
바다에서의 죽음 그는 거의 새벽 2시까지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자동차의 문을 잠그고, 창문은 올려놓고, 불빛을 끄고, 라디에이터의 격자무늬가 절벽의 모서리 너머 텅 빈 공간으로 투사되게 해놓고서. 어둠에 익숙해져 있는 그의 눈은 바다 표면이 호흡하는 것에, 즉 광대하지만 들떠 있는 거인이 잠을 자면서 악몽 때문에 주기적으로 깨어나는 것처럼, 계속해서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 호흡에 매료되었다. 가끔 화가 난 광풍처럼 소리가 달아나 버렸다. 가끔 그것은 열에 들떠 헐떡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해안선을 갉아먹고는 그들의 전리품을 가지고 멀리 후퇴하는, 밤 파도 소리가 다시 들렸다. 여기저기 거품이 이는 잔 물결은 어두운 표면 위에서 반짝거렸다. 어떤 때에는 푸르스름한 우윳빛의 광선이 하늘 높이 별들 사이로,.. 2021. 2. 28.
영혼과 영원 나는, 초인간적인 행복은 없다는 것과 일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영원은 없다는 것을 배운다. 이 얼마 안 되면서도 본질적인 부속물들, 이 상대적인 진실들은 나를 감동시키는 유일한 것들이다. 다른 것들, 즉, 인 진실들에 관해서는, 나는 그러한 것들을 이해할 만한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이 짐승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천사들의 행복에서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이 하늘이 나보다 더 오래 영속될 것임을 알 뿐이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도 지속될 것 말고 그 무엇을 영원이라 부르겠는가? - 알베르 까뮈, 「알지에에서 보낸 여름」(철학 에세이) 중에서 (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 육문사, 1993, 부록 197~198쪽). 블로그 『강변 이야기』(2012.2.6.. 2012. 5. 1.
봄! 큰일이다 봄! 큰일이다 ◈ 내 그럴 줄 알았다. 대책 없이 앉아 있다가 …… 봄이 올 줄 알았다. 겨울 다음엔 봄이라는 건 '법칙(法則)' 이상의 것이지만, 경험만으로도 계산상 이미 예순여섯 번째가 아닌가. ◈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어린애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초인간적인 행복.. 2011.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