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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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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먼로 〈물 위의 다리〉죽음 앞에서 만난 사람 앨리스 먼로 소설 〈물 위의 다리〉 소설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뿔 2007) 마흔넷 유부녀 지니가 캄캄한 밤에 웨이터 리키와 함께 있다. 처음 만난 사이이다. "보여 드릴 게 있어요. 아마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걸 보여 드릴 게요." 그가 말했다. 이전이었다면, 이전의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지금쯤 겁이 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실 예전의 정상적인 그녀라면 애당초 이렇게 따라나서지도 않았겠지만. "호저예요?" 그녀가 물었다. "아뇨, 호저는 아니에요. 호저만큼 흔한, 그런 게 아니에요. 적어도 제가 아는 한은요." 1킬로쯤 더 가서였던가, 그가 전조등을 껐다. "별 보여요? 저기, 별이요." 그가 물었다. 그가 차를 세웠다. 처음에는 사방이 그저 고요로 가득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아주.. 2021. 11. 28.
암인가? 1 아내는 감기 때문에는 결코 병원에 가지 않는다. 가령 발을 삐어도 그런 것쯤으로는 가지 않는다. 그러다가 내가 어디 불편하다고 하면 그 태도가 돌변한다.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병원에 가지 않고 왜 그러고 있어?"("어떻게 하려고 그래?" 혹은 "오늘은 꼭 병원에 가.") 그렇게 해놓고 정작 본인의 문제가 될 땐 해석이 다르고 막무가내로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 일로 다툰 것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병원에 가지 그래?"("함께 병원에 갈까?") 그런 식 대화는 이미 옛날 얘기다. "아니."("안 가도 돼." 혹은 "어제보다 많이 나았어.") 그러면 그만이다.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어제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일 때, 정말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싶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왜.. 2020. 1. 18.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김승욱 옮김, 알마, 2014 1 2010년, 4기 식도암이 림프샘, 허파까지 전이된 상태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입니다. 2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악명 높은 단계 이론, 즉 부정, 분노, 타협, 우울 단계를 거쳐 결국은 '수용' 단계에 이르러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이론"에서 '부정'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된 이 기록의 대부분은 고통에 관한 것이었지만 몸이 아프다는 것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좌절' 혹은 '아픔'의 비중이 더 컸습니다.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부터 놀라워서 이 인물은 평범하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멍청한 질문에 우주는 아주 귀찮다는 듯 간신히 대답해준다. "안 될 것도 없잖아.. 2018.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