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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아픔2

어디까지가 나인가? "미흡함, 거북함, 수치감, 아픔, 고통, 절망스런 그 어떤 기억이라도 지금에 뒤돌아보니 리얼함이 묻어 있는 살았다는 증표가 아닐까." 이달엔가 지난달엔가,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되는 김채원 작가의 글에서 옮겨 써놓은 문장이다. 그런가? 정말 그런가? 그러면 그런 미흡함, 거북함, 수치감, 아픔, 고통, 절망들을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인가? 살았다는 증표이므로. 그렇지만 나는 나의 그런 것들을 털어놓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아, 답설재에게 그런 일이!.....' 할 것이 어렵게 다가온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도 있는데도 그렇다. 나 자신에게부터 그게 어려운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도 덜 된 인간이어서'일까? 2023. 4. 2.
나는 왜 아플까? 심장병이 걸려 응급실에 실려가고 두 차례 핏줄도 뚫고 했다는 걸 주변에서 알게 되고, 무슨 자랑거리나 생긴 것처럼 "이렇게 지낸다"며 이 블로그에 쓰고, 그렇게 지내다가 내 건강을 기도한다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기도? 나를 위해? 놀라웠습니다. 우선 나는 정말 기도를 필요로 하는가, 공연한 일 아닌가 싶었습니다. 절실하면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도 흔히 기도를 하게 된다는 것도 알고는 있고 쑥스럽지만 간절히 기도한다고 해서 효과가 나타나는 건 아니라는 걸 오십 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단 하루이틀만이라도 말미를 달라는 기도를 하며 직접 확인해 본 적도 있었습니다. 구태여 효과를 바라지 않거나 효과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기도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 2021.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