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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심창만2

심창만 「무인 등대에서 휘파람」 또 구월이 가고 시월이 와서 이러다가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무너지는 둑을 바라보듯 곧 끝장이 나는 것 아닌가 싶어 그 심란함을 써놓았더니 설목(雪木, 박두순)이 와서 보고 자기는 좋다고 시월도 좋아서 야외에 나가면 휘파람을 불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문득 심창만 시인이 생각났습니다. 「무인 등대에서 휘파람」 곧 시집을 찾아보았더니 전에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시인이 아예 내 이야기를 써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시인은 허구한 날 이 세상 누군가를 위해 온 생애를 바치며 시를 써주는 사람이니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데 애쓰긴 어려울 것입니다. 연설문 대필을 직업으로 삼거나 남의 일생 이야기에 분칠을 해서 우아하게 보이도록 하는 자서전을 대필하는 것도 아니고 읽는 순간 입을 닫고 생각하게 하는 이야.. 2022. 10. 5.
심창만 「맑은 날」 심창만 《무인 등대에서 휘파람》 한국도서관협회 2012 우수문학도서 푸른사상 2012 맑은 날 마당에 병든 누에를 내던졌다 죽기도 전에 새들이 날아와 물고 갔다 누님은 새털처럼 가벼운 나를 업고 빨래를 널었다 하염없이 빛나던 누님의 목덜미 창백한 우물이 소리 없이 흔들렸다 더 가벼워지면 나는 어디에 던져질까 마당가에 내던져진, 허물허물해지거나 누렇게 병든 누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때 나는 그걸 못 본 체했습니다. 끔찍했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는데 지금은 모면한 것이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얼른 고개를 들어 햇빛이 쨍쨍한 맑은 하늘 저 편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 누에들은 개미떼에게 속절없이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버려져야 할 것은 맑은 날.. 2013.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