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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심보선2

심보선 「새」 새 / 심 보 선 우리는 사랑을 나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아주 밝거나 아주 어두운 대기에 둘러싸인 채.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달빛을 받아 은회색으로 반짝이는 네 귀에 대고 나는 속삭인다. 너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너는 지금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가. 사랑해. 나는 너에게 연달아 세 번 고백할 수도 있다. 깔깔깔. 그때 웃음소리들은 낙석처럼 너의 표정으로부터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 방금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미풍 한 줄기. 잠시 후 그것은 네 얼굴을 전혀 다른 손길로 쓰다듬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만났다. 우리는 여러 번 만났다. 우리는 그보다 더 여러 번 사랑을 나눴다. 지극히 평범한 감정과 초라한 욕망으로 이루어진 사랑을. 나는 안다. 우리가 새를 키웠다면, 우리는 그 새를 아.. 2024. 3. 20.
심보선 「어찌할 수 없는 소문」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죽음이 삶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불길한 낱말이다 나는 전전긍긍 살아간다 나의 태도는 칠흑같이 어둡다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매번 오고야 마는 것이 미래다 미래는 원숭이처럼 아무 데서나 불쑥 나타나 악수를 권한다 불쾌하기 그지없다 다만 피하고 싶다 (하략) 2014년 7월 13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에 이렇게 딱 두 연만 소개됐고, 강은교 시인의 감상문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인가. 소문인가. 존재는 없는가. 자기의 존재성이 가끔 의심되는 날, 이런 시를 읽어보자. 당신을 보고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는 이들, 분명 ‘그들이 말하는 그 사람’이 ‘나’는 아니다. 일터에서 ‘사람사이 터’에서 늘 오해받고 있는 나. 다시 한번 말한다.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하고 싶은 날,.. 2022.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