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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시계2

속절없는 나날들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줄은 잘 압니다. 이곳에 눈이 내리던 저 날만 해도 사태는 시작에 불과했고 이런 상황일 줄은 몰랐습니다. 남은 게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 정말 뭔가 좀 해야 할 처지인데 오늘도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저렇게 재깍거리고 똑딱거리는 시계가 원망스럽습니다. 이 방에만 해도 세 개인 시계가 우습게 보입니다. 뭘 하겠다고 시계를 모아 두었을까? 시계가 여러 개이면 시간을 조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내 시간이 좀 늘어나기라도 할 줄 알았던 걸까? 변함없이 저렇게 재깍거리고 똑딱거리는 저 시계를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안부 전화로, 자랑처럼,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던 K 교수가 '알파고'처럼 느껴집니다. "시간을 정복한 사나이 .. 2020. 4. 15.
한 개의 시계, 여러 개의 시계 Ⅰ 시계가 하나뿐일 때는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가졌습니다.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세상에는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 시각이 표준시각이 아닌 '가짜 시각'일 것이 뻔한데도 시계를 바라볼 때마다 '아, 벌써 11시 35분이 넘어가는구나!' 하며 거의 분 단위까지 그 시계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다가 시계가 흔해져서 이 방에도 시계, 저 방에도 시계…… 방방이 시계를 걸어두게 되었고, 화장실에도 전화와 시계 등의 기능을 갖춘 무슨 기기가 붙게 되었으며, 컴퓨터 화면도 늘 시각을 표시해 주는데도 이 컴퓨터 옆에까지 시계를 두었고, 서장, 진열장 안에도 탁상용 시계를 넣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구석에 쌓아둔 책 더미 위에도 시계를 얹어 두게 되었습니다.. 2015.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