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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순수3

레이몽 라디게 《육체의 악마》 레이몽 라디게 《육체의 악마》 윤수남 옮김, 청림출판 1989 19세 약혼녀(유부녀)와 16세 소년이 애정 행각을 펼친다. 15분 동안 나는 정신없이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고 나서 식사 도중에 방해가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 땀에 흠뻑 젖은 채로 10분 동안이나 문 밖에 서 있었다. 그동안이면 심장의 고동도 가라앉으려니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세차게 뛰는 것이었다. 하마터면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갈 뻔했다. 그런데 마침 옆집 창문에서 한 여자가 아까부터 문 앞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수상쩍게 내다보고 있었다. 그 여자가 마침내 나를 결심시켰다.(44) 난로 앞에 앉아 있는 우리의 몸이 어쩌다 스치기라도 한다면, 나는 조금만 움직여도 이 행복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이 느껴져서 되도록 가만히 있었다... 2022. 1. 11.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Ⅱ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Ⅱ 정영란 옮김, 민음사 2011 한 달이 더 걸려 읽었는데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신부님 일기를 훔쳐보는 것 같아서 때로는 좀 미안해지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이 단순하고 서투르고 촌스럽고 가난한 신부님과 헤어져야 한다는 게 서글픕니다. 이제 어떤 책을 읽어야 이 허전함을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신부님 이야기여서 당연히 종교적인데도 취향에 꼭 맞는 책이었습니다. 하루에 한두 페이지씩 읽었습니다. 마치 詩 읽듯했습니다. 해설을 합쳐서 436쪽이니까 한 달 이상 하루에 겨우 한두 페이지를 읽었는데도 온통 이 신부님 日記를 읽는 데 힘을 쓴 것 같은 느낌입니다. 우스울지 모르지만 문장도 시가(詩歌) 같아서 몇 번을 거듭 읽다가 졸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그.. 2012. 2. 12.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Ⅰ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Ⅰ 정영란 옮김, 민음사 2011 J 선생님. 날씨가 차갑다면서 외출할 때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받고 한참 동안 행복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걱정해 줄까 생각하면 저는 얼마든지 행복해도 좋을 것입니다. 정말로 좋은 책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종교문학작품인 것이 유감이긴 하지만 그 '종교'를 우리가 해석하고 싶은 '교육'이라고 해도 좋다면 얼마든지 좋은 책입니다. 정말이지 이처럼 진지하게 읽은 책이 내게는 과연 몇 권이나 될는지 의심스럽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하고, 서투르고, 쑥스럽고, 어리석고, 불운하고, 스스로 쓸모없는 인물이라고 여기는, 그렇지만 선량하고, 순수하고, 그 무엇보다 사제다운(교육자다운) 이 시골 신부님에게는 가르침을 주.. 2012.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