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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설국2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유숙자 옮김, 민음사, 2002 이 찬란한 여름에 설국(雪國)'이라니! 둘러댈 이유를 찾아볼까 싶었지만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밖에는 없습니다. 1980년대의 어느 날, 석박사 학위논문 계획 발표회에서 사창가 여성들의 이동에 관한 박사논문을 쓰겠다고 하던 학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는 사창가 여성을 구경한 적이나 있을까 싶은, 남성의 특징을 고루 구비하고 있기나 한지 확인해보고 싶을 만큼 '얌전한'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그런 곳을 찾아다니며 조사하겠다는 건지…… 이젠 그 학자가 누군지 기억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런 문제를 파헤쳐 발표하는 표정은 심각하지만 정작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는 불분명한, 한심한 학자가 아니면 좋을 것입니다. ♬ 이 사랑 이.. 2014. 9. 1.
열차 옆자리의 미인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雪國』은 이렇게 시작되고, 그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가와바타 야스나리, 유숙자 옮김, 『설국』 민음사, 2014, 1판51쇄, 10~11). 벌써 세 시간도 전의 일로, 시마무라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왼쪽 검지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바라보며, 결국 이 손가락만이 지금 만나러 가는 여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군, 좀더 선명하게 떠올리려고 조바심치면 칠수록 붙잡을 길 없이 희미해지는 불확실한 기억 속에서 이 손가락만은 여자의 감촉으로 여전히 젖은 채, 자신을 먼데 있는 여자에게로 끌어당기는 것 같군,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있다가, 문득 그 손가락으.. 2014.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