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4 분노·절망이 악덕이라고? 14세기 초에 피렌체의 화가 조토는 한 성당의 벽을 프레스코화들로 장식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 성당에는 14개의 벽감(壁龕)이 있었으며, 조토는 그 하나마다에 서로 다른 미덕이나 악덕을 알레고리화한 초상화를 하나씩 그리게 되었다. 그는 회중석에 가장 가까운 오른쪽 벽에 우선 기본적인 미덕으로 일컬어지는 "신중" "용기" "절제" "정의"를 그렸고, 그다음으로는 기독교의 미덕으로 일컬어지는 "신앙" "자비" "희망"을 그렸다. 그리고 반대편인 왼쪽 벽에는 이에 상응하는 악덕들을 배치했다. "우둔" "변덕" "분노" "불의" "불성실" "시기" "절망"이었다. 알랭 드 보통이 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다가 이 부분에서 의아해졌다. 신중, 용기, 절제, 정의가 기본적인 미덕이고 신앙, 자비, .. 2024. 12. 13. 왜 자꾸 화가 나지?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플루타르코스 윤리론집 《수다에 관하여》 중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천병희 옮김, 숲 2010 지나가는 사람을 공연히 때리고 죽이고 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아내는 나더러 조심하라고 합니다. 하기야 가까운 사이에도, 부부간에도 화가 나서 싸우고 죽이고 했다는 뉴스도 보게 됩니다. 지난번에 읽은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 《수다에 관하여》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합본되어 있었습니다.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도 그중 한 가지인데 대화체로 되어 있었습니다. 밑줄 쳐 놓았던 문장들입니다.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평생을 치료가 필요한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무소니우스) 이성이 치료제 역할을 할 경우 (...) 혼 안에 남아 우리의 판단을 통제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일세.(63) 분노는 이성을 집에서 완전히.. 2021. 2. 8. 알 수 없는 분노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푸아예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함께 그때의 대화를 떠올리면,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삶의 공허함과 무의미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과 달리, 이 세상의 아둔함, 더 정중하게는 비논리를 슬플 만큼 경솔한 행동이라고 이해했고, 여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으며, 뿐만 아니라 웃으며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했다.(231~232) * 소설 『순수 박물관』(오르한 파묵)에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이라는 표현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그때의 대화를 떠올리면, (...)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삶의 공허함과 무의미함을 느끼게 된다." 삶의 공허함, 무의미함? 나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만큼 긍정적이었나? 천만에요! 사는 데 정신이 팔려서 이 생각 .. 2020. 7. 4. 괜찮은 척하기 Ⅰ 인형 '하나'가 밟혔습니다. 어둑어둑해서 몰랐고, 이게 뭔가 싶어서 내려다봐도 녀석은 무표정했습니다. 아픈 표시도 내지 않고 밟으려면 실컷 더 밟아보라는 듯 고개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어두운데 왜 여기 혼자 있지?" "굳이 물을 것 없지 않겠어? 괜히 뭘 묻고 그래?" Ⅱ 측백나무 화분 위에 앉혔습니다. 내가 데리고 들어갈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내일이라도 찾아가겠지…….' "외로워 보이는데?" "천만에! 웃기지 마! 난 괜찮아! 전혀!" Ⅲ 괜찮다고는 했지만, 이제 영영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거나 어쩌면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일 아침, 다른 아이가 집어가거나 떡볶이를 담았던 일회용 컵, 과자봉지 같은 것들과 함께 아파트 청소 담당자의 쓰레기봉투에 들어간다면 곧 끝장일 .. 2015. 5. 2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