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높은 나의 이마1 김영미 《맑고 높은 나의 이마》 김영미 《맑고 높은 나의 이마》 아침달 2019 묘비들은 이마를 높이 들고 여름엔 해가 길어 퇴근길에도 환했다 일산부터 합정까지 버스 창에 머리를 기대면 한강을 따라 물의 조각이 빛났다 겨울엔 빛의 조각을 따라 내 얼굴이 떠다녔는데 여름엔 그 얼굴이 보이지 않아 좋았다 유람선을 탄 것처럼 버스의 아래가 찰랑이고 지는 해가 물속을 향해 차선을 바꿨다 붉고 따뜻한 나의 아래 버스가 합정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외국인묘지가 마중 나왔다 작은 언덕에 박힌 묘비들은 이마를 높이 들고 석양을 빛냈다 가지런히 손등을 포개고 서 있는 미어캣들과 안녕, 안녕 저렇게 다소곳한 죽음의 인사라니 귀가를 알리는 표지석을 지날 때마다 나의 집은 언제나 멀어졌고 또 언제나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중 맑고 높은 나의 이마 수문으로 몰려드.. 2024. 2. 1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