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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딱따구리2

유희경 「이야기」 "조용히, 심지어 아름답게 무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조용히, 심지어 아름답게 무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희경 그해 여름엔 참 놀라운 일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딱따구리와 함께 보낸 장마 기간을 잊을 수 없다 빨간 머리의 딱따구리는, 적어도 내 방에서만큼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책장에 구멍을 내거나 구멍을 내는 소리로 나를 깨우지도 않았다 나는 더러 그가 딱따구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딱따구리였다 시내 큰 서점에 가서 사 온 커다랗고 비싼 조류도감에도 한 치 다를 바 없는 그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으니까 딱따구리가 때론 포유류의 머리를 공격해 뇌를 파먹기도 한다는 경고를 그 책에서 읽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머무는 동안 나는 희미하고 끈질긴 두통에 시달렸다 그럴 때마다 머리의 이쪽저쪽을 만져보면서 딱따구리.. 2024. 5. 23.
박성우 「밥벌이」 밥벌이 - 박성우(1971~)  딱따구리 한 마리가 뒤통수를 있는 힘껏 뒤로 제꼈다가 괴목(槐木)을 내리찍는다 딱 딱 딱 딱딱 딱 딱딱, 주둥이가 픽픽 돌아가건 말건 뒷골이 울려 쏙 빠지건 말건 한 마리 벌레를 위하여 아니, 한 마리 버러지가 되지 않기 위하여 아니, 한 끼 끼니를 위하여 산 입을 울리고 골을 울린다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창비) 中     나는 이 시를 읽고 웃음이 터졌습니다.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 웃었습니다.딱따구리의 그 모습을 떠올려주는 저 시를 읽으면 일단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웃기지 않습니까?"주둥이가 픽픽 돌아가건 말건 뒷골이 울려 쏙 빠지건 말건""한 마리 버러지가 되지 않기 위하여 아니, 한 끼 끼니를 위하여 산 입을 울리고 골을 울린다" .. 2019.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