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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눈 오는 날5

백설난분분白雪 亂紛紛 2023. 1. 26.
김수영 「눈」 이 파일은 가짜입니다. 미안합니다. 10년 전쯤 어느 눈 오는 날 오후, 김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민음사)와 최영미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시》(해냄)를 보며 이 시 감상문을 썼었는데 일전에 곧 올해의 눈이 내리겠다 싶어서 들여다보다가 뭘 잘못 만져서 그 파일을 잃었습니다. 저녁 내내 앉아 있어도 그 감상문 시작 부분은 떠오르는데 다른 부분은 제대로 기억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유난히 댓글도 많았었으므로 그것도 가슴 아팠습니다. ............................................................................................................................................................. 2021. 10. 27.
이즈미 시키부 「내가 기다리는 그이가」* 1988년 2월 26일. 나는 시에 대한 논의를 아주 싫어한다…… 그보다는 천 년 전 일본 여성 시인 이즈미 시키부(974~1034)의 시 한 편을 좋아한다. 내가 기다리는 그이가 지금 온다면, 난 어떡하지? 이 아침 눈 덮인 정원은 발자국 흔적 없이 참 아름답구나. 이런 시가 지식의 도구가 아닌가? 그렇다, 지식의, 그리고 철학보다 더 심오한 차원에서. ― Czeslaw Milosz(체스와프 미워시)의 일기 『사냥꾼의 한 해』 중에서** 블로그 『삶의 재미』의 노루님이 댓글에서 보여준 시입니다. 그건 정말 나에겐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무얼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게 하는 시입니다. 더구나 체스와프 미워시라는 시인의 저 한 마디 평(評)도 시 못지않습니다. 노루님은 시인 체스와프 .. 2015. 12. 15.
「새우전傳」 새우전傳 함명춘 노량진 수산시장 입구엔 내장처럼 버려진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혼잣말을 하는 것이었다 고향은 목포 앞바다였다고 어딜 가도 먹을 게 지천인 청정 해역에서 눈은 송곳같이 빛났고 가슴 속엔 잠시도 잦아든 적 없던 꿈이 물결치는 새우였다고 어느 날 어부들이 풀어놓은 그물에 잡혔는데 덩치가 성인만큼 커서 바로 곡마단에 자기를 팔아 넘겼다고 했다 눈을 떠보니 자기 몸엔 흰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가 매어져 있었고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는 단원이란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눕히곤 다리로 공을 굴리는 일을 시켰다는 것이다 사소한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그들은 수시로 채찍을 휘둘렀고 얼마 후 여러 개의 다리로 셀 수 없이 많은 공을 굴리게 되자 수많은 관객들이 몰려와 하루아침에 그.. 2015. 11. 26.
눈 내리는 날 종일 눈이 내렸습니다. 그렇게 많이 내려 쌓이진 않았지만, 흡사 창밖을 내다볼 때마다 내리는 것처럼, 추억이 떠올랐다가 스러지는 것처럼, 예전처럼, 부슬부슬 내리기도 하고 이리저리 흩날리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꾸 옛 생각에 젖어들게 됩니다. 그대도 그렇습니까? 옛 생각을 하게 됩니까? 그 옛 생각이란,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의 눈발을 내다볼 때마다 어느 한 시기의 일들에 고정되는 생각들입니다. 대부분 어려웠던 시절에 생각이 머무는 걸 보면, 좋았던 일들보다 어려웠던 일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상한 것은, 지금 눈 내리는 모습을 내다보며 생각하는 그 일들이, 다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때는 이렇게 그리워하게 될 줄을 전혀 몰랐던 일들입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나, 지.. 2014.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