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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노루4

내 친구 연우 연우(連雨)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사라진 지 20년은 되었습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고들 했습니다. 연우는 대학 다닐 때 시를 썼습니다. 학보사 주최 문예행사에서 장원을 했습니다. 나는 소설을 냈는데 소설을 낸 학생은 나뿐이었습니다. 연우나 나나 이 년째 거듭 수상을 했습니다. 나는 대안극장 바로 뒷골목 오른쪽 셋째 집이었던가, 괄괄하고 털털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거처를 정해놓고 하루 한두 끼 밥을 먹고 잠을 잤는데 어느 날 누군가 연우와 함께 지내면 좋지 않겠느냐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방 학생들과 달리 도무지 일어날 기색이 없으면 할머니는 다짜고짜 문을 열어 붙이고 들어와서 이불을 마루로 내던지며 "밥이나 먹고 또 자든지 하라!"며 고함을 지르곤 했는데 나는 .. 2023. 6. 16.
버려진 책장 : 먼지 대신 책 버리기 적어도 서너 곳일 이 아파트 폐기물 처리장에는 걸핏하면 멀쩡한 책장이 나와 있다. 물론 다른 가구도 나온다. '저렇게 나와 있으면 자존심 상하지 않을까?' 'AI 시대가 되어 책장 같은 건 구식 가구가 된 걸까?' '내겐 저걸 들여놓을 만한 공간이 없지?'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을 텐데...' 책을 모으고 틈틈이 분류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살펴보고 하던 시기는 지나가버렸다. 그 시절엔 그렇게 하는 것이 지상의 목표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위나 돈 따위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가치였다. 그런 책이고 책장이었다. 그 책, 그 책장들이 바로 나라고 해주면 그보다 고마울 일이 없었을 것이었다. 이젠 그렇진 않다. 뭐가 변했나? 아니다. 세월이 갔을 뿐이다. 세월이 간 것이어서 그런 흐름에 무슨 관점이 필요할 것도.. 2023. 3. 22.
지루한 수업 저 유명한 시인 이상입니다. 화가 구본웅이 그렸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2013.10.29~2014.3.30)에서 봤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에 옛 편수국의 구본웅 미술 편수관의 작품도 소개되었습니다. 「친구의 초상」. 이상(李箱)이 모델이었다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이용기 선생님은 뜻도 모를 오감도(烏瞰圖)를 자꾸 읽어 주셨습니다. 벌써 50년이 흘러갔습니다. 지금도 우리들 곁을 오락가락하시며 그 시를 읽어 주시던 선생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선생님! 그 이상 시인의 초상화를 문교부 구본웅 미술 편수관께서 그.. 2022. 10. 6.
Leisure / W. H. Davies 2016년 3월 초 어느 날, 콜로라도의 교수 '노루' 님이 이 블로그에 긴 댓글을 썼습니다. 그때 나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잘 쳐다봐주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를 썼을 것입니다. "선생님~" 아이들이 부르면 어떤 선생님은 웬만해선 그 애를 바라봐 주지도 않고 말할 게 있으면 해 보라는 시늉만 하곤 했습니다. 복도에서 선생님을 만난 아이가 "안녕하세요, 선생님~" 해도 어떤 선생님은 코대답도 않고 지나갑니다. 나는 그게 정말 못마땅했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봐 주지도 않는 주제에 그 아이를 어떻게 가르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길게 얘기하면 아직도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나는 2010년 2월에 정년이 되어 학교를 떠나며 그 학교 교직원 전체의 의자를 모조리 회전의자로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2021.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