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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 친구3

"IT TOOK ME 90 YEARS TO LOOK THIS GOOD" 내 친구 김 교수가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여기 오면 기분이 좋아요." '여기'란 우리 동네이기도 하고 그 카페이기도 합니다. 그는 메뉴판 들여다보는 시간의 그 여유를 좋아합니다. 매번 30분은 들여다보지만 그래봤자 뻔합니다. 살펴보고 망설이고 해 봤자 결국 스파게티나 리소토 한 가지, 피자 한 가지를 시키게 되고 우리는 그것도 다 먹지 못합니다. 그는 다만 미리 콜라를 마시며 그렇게 망설이고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즐길 뿐입니다. 지난 1월의 어느 일요일에 만났을 때는 그럴 줄 알고 내가 콜라 한 병을 미리 주문해 주었는데 얼음을 채운 그걸 마시며 이번에도 30분 이상 메뉴판을 이쪽으로 넘기고 저쪽으로 넘기고 하더니 난데없는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스테이크 시킬까요?" "그 비싼 걸 뭐 하려고.. 2024. 2. 13.
냉면 시키면 불맛 나는 불고기도 주는 집 아내와 함께 식품가게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 자그마한 그 냉면집이 눈에 띄어서 김 교수 얘기를 꺼냈다. "저 가게 김 교수가 혼자 드나들던 집이야." "나도 가봤어. 그저 그래." "김 교수는 맛있다던데? 몇 번이나 얘기했어. 냉면 시키면 불맛 나는 불고기도 준다면서." "친구들하고 가봤는데, 별로던데..." "냉면이나 불고기나 평생 안 먹어도 섭섭해하지 않을 사람이니 어느 가게엘 가면 맛있다고 할까?" "......"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겠지?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탈이다. 아이들과 시험문제 풀이를 할 때처럼 매사에 정곡을 찔러야 직성이 풀린다. 죽을 때는 이 성질머리를 고쳐서 갖고 갈 수 있을까? 별수 없이 그냥 갖고 가겠지? "그 버릇 개 주나?"라는 속담도 있으니까. 인간은 고쳐서 쓸.. 2024. 2. 3.
사랑의 여로 그는 물리학을 사랑했습니다. 어쩌면 명예와 화려한 활동도 사랑하지 않았을까 싶기는 합니다. 사랑이라니! 그가 사랑한 대상은 오래전에 떠난 그의 부인이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속 얘기를 해도 좋을 때, 그런 장소에 앉게 되면, 그는 먼 나라의 유명한 대학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그의 연구실 얘기도 하고, 한시도 잊은 적 없다는 그의 부인 얘기도 합니다. 그가 지금 그 먼 나라에 있지 않고 여기 우리 동네에 와 있는 것도 사실은 그 부인과의 추억이 너무나 생생해서 도저히 그곳에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명예? 국가·사회적 활동? 분명히 그런 것도 좋아하긴 했습니다. 멋진 나라들의 음식 얘기도 하고, 부인과 함께 그런 나라의 한적하고 행복한 길을 걸은 얘기도 하고…… 여러 나라 대통령을 만난 .. 2017.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