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3 김원길 《적막행寂寞行》 김원길 시집 《적막행寂寞行》 청어 2020 시인과 함께하던 그 저녁들로부터 오십 년이 흘렀습니다. 나는 이렇게 허접하고 시인은 변함 없습니다. 여든이 된 시인이 바라보는 적막이 이런 것이구나, 표지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저 빛깔은 이십대 중반의 시인이 보여주던 적막이었습니다. 서정(抒情)의 강물 같습니다. 소년기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정(情)이 아니었습니다. "자, 또 한 편 써볼까?" 하고 술술 써내려갔을 듯한, 낯간지러운 '말놀이'도 아니었습니다. 마법 그리운 율리아나, 어이 할거나. 나는 몹쓸 저주에 걸려 여인의 사랑만이 사슬을 푼다는 별난 마법에 걸려 괴물의 몸으로 빈 성에 숨어 사는 이야기 속 딱한 왕자. 율리아나, 그대 또한 멀리 외져 발길 없는 숲속 궁전, 백 년을 옴짝 않고 누워 잠자.. 2020. 6. 28. 돌아가는 길에 만난 아내 1 평생 강의를 하며 지내지 않았겠습니까? 선생이었으니까요. 교육부 근무도 오래 했으니까 그동안 교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만 해도 거짓말 보태지 않고 수백 번은 했습니다. 그 이력으로 학위도 없으면서 어느 SKY 대학 박사과정 강의도 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퇴임한지도 오래되어 강의할 데가 없어졌는데 그 '후유증'(?)으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인지 아침저녁으로 아내를 '앉혀놓고'(? 앉으라고 해서 앉은 건 아니지만)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 이 표현이 적절할지……. 어쨌든 이젠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이야기를 할 대상이 그 한 명 외에는 전혀 없게 된 것입니다. 2 말하자면 나에게 남은 마지막 청중은 딱 그 한 명뿐인데, 내 강의에 이렇게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2016. 11. 10. 지난 일요일의 축제 지난 일요일의 축제 일요일 아침, 아내가 좀 먼 곳에서 공연이 있다며 한복이랑 좀 실어다 달라고 했습니다. 축제 현장은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아늑한 곳인데 나만 그렇지 않은 곳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세상이 늘 그렇다면 아이들에게도 덜 .. 2014. 10. 2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