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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나무2

우리가 떠난 후에도 제자리에 남아 거실 창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저 나지막한 산은 규모는 그저 그래도 겨울이나 여름이나 기상은 믿음직합니다.새잎이 돋아난 연둣빛이 수줍은 듯 곱던 날들이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녹음에 싸여 저기 어디쯤 들어가 있으면 누가 무슨 수로 찾을 수 있을까 싶고, 몇몇 산짐승이나 새들, 온갖 벌레들이 한동안 마음 놓고 지낼 듯해서 더 푸르러라, 아주 뒤덮어버려라, 응원을 보내게 됩니다.우리 인간들이 걸핏하면 괴롭히지 않습니까?매연도 그렇지만 저렇게 좋은 산을 야금야금 파먹어버립니다. 이래저래 가만두질 않습니다. 하루하루의 변화가 그들에게는 결코 이로울 게 없는데도 자연은 웬만하면 그 상처를 스스로 덮어버리고 우리가 잘라버리지 않는 한 언제나 저 자리를 지키면서 저 싱그러움, 푸르름으로 눈길을 끌어주고, 내가 그.. 2024. 5. 17.
나무의 기억 '나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주인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내가 떠나면 세상은 어떻게 되나?'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내가 떠나도 저 나무는 당연하다는 듯 저기 저렇게 서 있겠지.' 그럴 때 나는 나무를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느 날 나무는 생각할 것이다. '한때 그가 이 길을 다녔지. 그의 잠깐을 영원처럼 여겼지.' 나무는 다시 다른 사람이 오가는 걸 보면서 곧 나를 잊을 것이다. 잊진 않을까? 사람은 무엇이든 금세 잊거나 오래 기억하거나 하지만 나무는 기억할 것은 영원히 기억하고, 기억하지 않을 건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지도 모른다. 나무는, 가령 저 밤나무 같으면 어떻게 적어도 150년 혹은 수백 년을 살까? 당연히 할 일이 있겠지? 할 일도 없는데 태어나고 살.. 2024.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