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사랑3 지금 여기에서의 사랑과 행복 젊음을 교단에 바쳤다고는 하지만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아이들을 직접 가르친 건 2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그 당시에는 부모 결손 가정이 흔하지 않아서 그런 점에서는 편한 교사 생활을 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담임한 아이들은 아버지나 어머니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눈에 띄면 마음만으로라도 특별히 유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D시에 전입해서 맨 처음에 만난 아이는 아버지가 없어서였는지 자주 내게 다가왔는데 나는 그게 오히려 고마워서 지금도 그 아이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잘 살고 있겠지' '이제 초로의 할머니가 되었겠구나...' 교육부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마지막 5년 반 동안 교장으로 지낼 때는 여기서나 저기서나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고, 그런 아이들은 예.. 2024. 6. 22. 어느 사형수가 세상의 선생님들께 남긴 편지 교사는 모든 학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사람만 따뜻하게 대해서도, 한 사람만 차갑게 대해서도 안 됩니다.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도 똑같이 사랑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눈에 띄지 않던 학생 중에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다정함을 언제까지나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단 한 번의 칭찬이 평생 기억할 수 있는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때때로 인생의 가치를 되찾게 만든다. 그것이 죽음이 일으키는 기적이 아닐까? 1967년 11월 2일, 일본 야마나시 현山梨縣의 고스게小管형무소에서 한 남성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 남성의 이름은 아키토島秋人, 향년 33세였다. 그는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주위 사람들의 냉대에 성격이 비뚤어져 비행 청소년으로 자랐다. 어느 비 오는 밤, 굶주림.. 2011. 12. 2. 드디어 나를 가르치게 된 「그 애」 요즘 몇 달째 이른바 '컨디션'이 엉망입니다. 이러다가 영 가는 건 아닌가, 그런 초라한 느낌일 때도 있습니다. 달이 지나도록 병원에 가봤자 별 수 없어서 한의원에 갔더니 한의원답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어떻게 살았는지, 면역력이 고갈되어 병이 나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만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정말로 힘든데도 두 달 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부산의 초등학교 교장들이 다 모였는데, 여러 분이 다가와 언제 어떤 인연이 있었다는 걸 밝히며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그 중에는 우리나라 교육과정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 지침을 만들 때 저를 만난 분도 있었고, 우리나라 교과서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교과서(사회, 4-1)를 만들 때 함께한 분도 있었고 - 말 그대.. 2008. 12. 1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