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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고문2

두려움 소설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94)에서 교황 요한 22세의 사절단장 베르나르 기가 황제의 사절단 일행, 수도원장과 수도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인 혐의로 수도사 레미지오를 문초하는 장면은 584쪽에서 617쪽까지이다. 이 34쪽을 단숨에 읽었다. 두려웠다. 이른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더구나 아무리 후세에 비난을 받았다 해도 교황이라는 사람의 '바로 아래'에서 혹은 '옆'에서 하느님을 입에 달고 살아갔을 고위 성직자가, 이렇게 잔인하고 악독할 수도 있을까? 혹 그런 직위에 있으면 하느님이 '있으나 마나' 하다는 걸 훤하게 알아서 두려움 같은 게 사라지는 걸까? 아니, 이건 소설이지? 그럼 움베르토 에코의 마음속에 이런 잔인함, 악독함이 스며 있었던 걸까?…… 나는 성.. 2023. 7. 9.
主演의식과 助演의식(Ⅱ) 소설이나 영화, 연극에서는 주인공이 한 명이거나 두어 명입니다. 대체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이야기가 되고, 재미있게 됩니다(『삼국지』나『수호지』같은 그야말로 ‘대하소설’을 들고,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많다.”고 하면 이 이야기의 취지와 어긋나는 사례가 됩니다). 그러나 교육에서는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이 보조 역할을 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습니다. 학교의 주인공은 학생이라고 하면, 그것은 공감하시겠습니까? 누가 “교장이 주인공이 아닌가?” 한다면 그는 제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하기야 교장이 감시․감독․통제의 역할을 담당하면 그가 주인공 행세를 하는 것이고, 그러면 그 학교 교육은 이미 따져보나 마나 실패한 경우가 될 것입니다. 직설적으로, 딱 한 가지 예만 들어볼까요? 교실.. 2008.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