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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감기2

가을엽서 : 내 이명(耳鳴)은 스테레오 18일 오후, 저 숲을 지나는 바람은 스산했습니다. 매마른 가랑잎들이 온 거리를 뒹구는 듯 했고 그 바람들이 두런거리며 귀가를 서두르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다 떠나버려서 텅 빈 초겨울 저녁 같았습니다. 8월 7일이 입추였으니까 사십일만에 가을을 실감한 것입니다. 저 길을 서둘렀습니다. 그 저녁에 올해 처음으로 감기에 걸렸고 며칠 앓으며 지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가기가 싫어서 판피린만 부지런히 마셨습니다. 머리 안쪽에서 기계 돌아가는 듯한 이명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은지 이십 년은 되었을 것입니다. 이 가을에 내 이명은 스테레오 타입으로 변했습니다. 한쪽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직선형(直線形)으로 들리고 다른 쪽에서는 파선(波線 물결선) 형태의 이명이 그 직선형과 보조를 맞춥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2020. 9. 26.
감기 걸려 목이 아픈 날 "감기 걸렸다며?" "응." "먼지가 많아서 조심해야 해." "응?" "조심해야 한다고―." "응." "밥도 많이 먹고―." "응." "밖에는 먼지가 많으니까……" "응?" "바람 속에 먼지가 많은 날이니까 답답해도 집에 있어야 한대." "응." "병원 가야지?" "응." "의사 선생님이 약 먹으라고 하거든 잘 먹어야 해?" "응." "많이 보고 싶어. 응?" "응." "그럼, 끊을게―." "응." 전철역에서 환승을 하러 걸어가며 전화를 했습니다. "응?" "응" 하는 것만 듣고 끝났지만, 이 삶에도 경이로움이 있다는 사실이 또한 경이로웠습니다. 2015.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