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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가난4

맛집을 많이 알아야 좋은 어른이다! 한때 어느 분이 하루에 열 통 정도 온갖 정보를 담은 메일을 보내주었는데 이젠 그분 기력이 쇠하여 중단되었습니다. 주로 "좋은 글에서" 같은 것들 아니면 우리가 이미 다 아는 것들을 편집한 것들, 케케묵은 사진들... 그런 것들이어서 제목을 죽 살펴보고 한두 개만 열어보고 그자리에서 바로 삭제하곤 했습니다. 그런 날도 있었습니다. '이겨야 하는 싸움'도 그분이 보내준 것인가, 확실하진 않습니다. '이기면 손해보는 싸움' '이겨야 하는 싸움'... 내용을 살펴보니까 '그렇겠다' 싶었습니다. 싸움에선 이기는 것이 善이지만 이기면 손해보는 싸움이 다섯 가지가 있다. 1. 아내하고 싸워서 이기면 손해 본다. (가정을 지옥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2. 자식하고 싸워서 이기면 손해 본다. (자식이 곁길로 가던지 기.. 2022. 1. 23.
잊히지 않는 밥상 (1) 잊히지 않는 밥상 ⑴ 아침의 서울1호선 1 그 밥상을 떠올리면 너무 멀리 와 있는 느낌입니다. 거기 그날들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괜히 이렇게 떠나와 있고 어쩌면 그날로 되돌아갈 수도 있을 듯한 느낌일 때도 있습니다. 나는 오십여 년 전에 초등학교 교사 발령을 받아서 첫 해에 4학년.. 2019. 6. 11.
박형권 「탬버린만 잘 쳐도」 탬버린만 잘 쳐도 박형권 옆방 젊은 여자하고는 이사 첫날부터 찌그려졌다 이삿짐 다 옮겨놓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보니 출입문이 두 개 있는데 어느 문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 문이나 열긴 열었는데 꽃 같은 장롱에 복어 주둥이 같은 살림살이들 아, 이 문이 아니었다 얼른 닫고 옆문을 여니 마누라 같은 두루마리 화장지 딸 같은 시집詩集 그래 여기가 내 집이지 한시름 놓는데 누가 문을 쾅쾅 두드린다 ―야, 너 뭐하는 놈이야? 여자들만 사는 집을 왜 들여다봐? 그렇게 꼬이기 시작한 인연은 일 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았다 할머니 한 분과 여자와 여자의 어린 딸이 사는 것 같은데 모두 가을바람 앞의 코스모스 같았다 이슬만 먹고 사는지 그 방에서는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며칠째 옆방에서 탬버린 소리가 .. 2014. 10. 4.
강기원 「장미의 나날」 장미의 나날 강 기 원 그 동네에선 우리 집 장미가 제일 붉었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은 집집마다 장미가 있었지만 유독 장미집이라 부르곤 했는데요 식구들이 모두 단잠에 빠져든 밤 아버진 휘늘어진 넝쿨 밑동에 아무도 모르는 거름을 붓곤 했는데요 나 홀로 깨어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는데요 비밀스런 겹겹의 꽃잎은 뭉게뭉게 자꾸 피어나고 장미가 붉어지는 만큼 나와 동생은 자꾸 핼쑥해져갔는데요 그러고 보니 엄마의 낯빛도 갱지처럼…… 이상한 건 향기였지요 수백 수천 송이가 울컥거리며 피워내는 피비린내 마당을 넘어 집 안까지 기어든 넝쿨은 소파를 뚫고 곰팡이로 얼룩진 벽을 타고 생쥐가 들락거리던 아궁이 속에서도 붉게 검붉게 소문 같은 혓바닥을 내밀기 시작했는데요 그 무렵 우린 아버지의 주문 따위 필요 없이 스스로.. 2009.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