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정원의 꽃을 꺾어 들고 병문안을 왔었다
꽃이 눌릴까 조금 느슨하게 쥐고
발그레한 뺨을 만지며
그녀는 꽃의 이름을 일일이 말해주었는데
병실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곡을 조용히 따라 불렀는데
그 오후의 빛은 어디로 갔을까
정원에는 얼마나 많은 계절이, 비와 바람이 지나갔는지
그녀는 속수무책 시들어가고 시들어가고
수척한 얼굴로 휠체어에 앉은 모습을
우연히 사진에서 보았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손에는 지금도 꽃이 들려 있을까
이름을 잃어버리면
연관된 모든 게 사라져버린다던가
정원에 나가지 못한 지 오래,
그녀는 자신의 이름도
꽃의 이름도 내 이름도 잊었겠지만
수많은 꽃들에게 이름을 지어준
식물학자 린네는 말년에
뇌졸중으로 자신의 이름마저 잊었어도
꽃을 쥐고 있는 손의 감각만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카프카는 물도 마실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필담 쪽지에 이렇게 썼다*
- 작약에 물 좀 주세요.
- 글라디올러스를 보여주세요.
- 골담초는 하나도 못 구하나요?
- 그 붉은 가시나무가 너무 숨었어요.
- 라일락은 햇볕 드는 데로 옮겨주세요.
그가 마지막으로 염려한 것은
꽃이었다, 아니,
꽃의 연약함이 가장 마지막까지 그를 지켰다
가만히 꽃을 쥐고 있는 손을
* 줄표(-) 다음에 인용된 다섯 문장은 엘렌 식수의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신해경 옮김, 밤의책, 2022, 270-272)에서 발췌.
................................
나희덕 1989년 『중앙일보』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파일명 서정시』 『가능주의자』 『시와 물질』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백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수상.
월간 『현대문학』 2026년 2월호.

아름답기로 치면 사람도 꽃이다. 그 꽃이 곧 시들어버린다.
'詩 읽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우영 / 장안문에서 달빛에 막혀 (6) | 2026.03.02 |
|---|---|
| 최승자 / 빈 배처럼 텅 비어 (6) | 2026.02.23 |
| 김현 / 소 (0) | 2026.01.31 |
| 심창만 / 청진기 (8) | 2026.01.21 |
| 홍윤숙 / 고향 외갓집 밤나무 숲 (10) | 2026.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