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소를 키웠다 손전등을 켠 채 옹송그리고 앉아 소와 대화했다 겨울에만 그럴 수 있었다 우리 소들은 겨울에만,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간의 말을 했다 소와 처음으로 대화한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셋째 누이였다 육 남매 중 가장 심성이 다사로운 누이는 상고를 나와 일찍부터 취업하여 돈을 벌었다 고졸 신입으로 은은히 따돌림을 당하며 남몰래 원형 탈모를 앓던, 그게 어째서인지 부끄럽던 누이에게도 대학에 가야겠다는, 부모의 품 떠나 집 떠나 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어서 소야, 소야, 우리 소야, 누이는 소하고만 대화했다 소는, 우리 소는 과묵하여 이 얘길 셋째 누이가 떠나고서야 내게 들려주었다 눈송이 폴폴 날리는 어느 겨울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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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2009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글로리홀』『입술을 열면』『호시절』『낮의 해변에서 혼자』『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장송행진곡』 등. 〈김준성문학상〉〈신동엽문학상〉 수상.
2025년 1월호『현대문학』

소 같은 놈이라고 빗대기도 하고 싸움도 붙이고 평생을 가두어 놓고 울어도 소리가 나지 않게 하고, 그렇게 하지만, 소는 생각이 깊다.
오늘 내다 팔아야겠다고 우리끼리 이야기해도 우리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눈물도 흘린다.
덤벼들거나 주장하거나 외치지 않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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