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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글에는 글쓴이가 들어 있다

by 답설재 2025. 9. 5.

 

 

 

1

 

 

나는 '금사빠'다.

초등교사로 발령받아 시골 살 때는 아무것도 없어서 신문에 나는 문학작품을 발견하는 일에 몰입했다. 음악방송 듣는 것도 좋아했지만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잡음이 많아 곤혹스러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음악감상쟁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교과서에 빠지게 되었다. 세상에 교과서보다 더 중요한 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교과서 집필로 한때 이름을 날렸다.

교과서 문장은 일단 '교육과정'(교육의 목적, 목표, 내용, 방법, 평가 등을 규정한 교육의 근거, 그러니까 '법전' 같은 것)에 충실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한, '아름다운'까지는 아니라면 미려한('미려한'은 더 높은 수준인가? 아무튼), 거기에 품위 있는 문장이면 최상이었다. 요즘엔 모르지만 내가 경험한 '우리 땐' 그랬다.

 

지금도 나는 문장 다듬는 일이라면 웬만큼은 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세상에 '윤문가(潤文家)'라는 직업이 있다면 그걸 한번 해보고 싶었다.

미래엔(전 대한교과서주식회사)의 전무, 사장, 고문을 거쳐 지금은 노령으로 고생하는 이승구 선생도 내가 교과서 윤문하는 걸 지켜보고는 "대한민국 편수 역사에서 윤문으로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는 칭찬을 해준 적이 있다.

 

나는 1980년대만 해도 D시를 떠난다는 생각 전혀 없이 살다가 교과서 원고 집필로 엉겁결에 중앙 무대에 등장한 교사였다.

나를 발견한 교육부 편수국 김용만 연구관이 널리 알렸고, 그 덕에 좀 행복하지만 너무나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그분은 교육부는 물론 학계 저명한 인사들에게까지 알려서 3년 후에는 결국 교육부 편수국 직원이 되었다).

 

당시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각 시도별 교과서를 만들 때였다.

회의 시간만은 행복감을 느껴도 좋았고 거리낌이 없었다. 전국에서 모인 교사, 연구사, 장학사, 장학관들은 물론, 교육부에서 부른 학자, 교수들도 '저 교사는 천재인가?' 하고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 행복이 영원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그 '불문율'이 깨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야……."

강우철 교수(이화여대 대학원장, 교육부 사회과 교과용도서 편찬위원장)가 그렇게 입을 열었을 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모두 귀를 기울였고 숨을 죽였다. 그분은 언제나 빨리 이야기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김 선생 원고는, 단어 하나하나 한 줄 한 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흠잡을 데가 없어. 아주 잘 다듬어서 교과서 문장답게 정교하게 기술되어 있지. 그러니까 뭔가 부족하다 싶어도 쉽사리 짚어낼 만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 거야."

그리고는 이렇게 이어갔다.

"그런데 말이야…… 김 선생 원고에는 말이야…… 아이들이 잘 보이질 않아."

 

"원고에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 한 마디에 변했다. 아니, 겉으로는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생각은 한없이 깊어졌다.

다른 사람 원고에는 아이들이 보이는지 묻고 싶지 않았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건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였다.

대학원에서 석사과정만 마치고 만 것이 한탄스러웠다.

잘난 체한 것이 부끄러웠다.

내가 도대체 뭘 읽고 생각해 왔나, 어떻게 살아왔나 후회가 밀려왔다.

교과서라는 건 도대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앞으로는 무얼 읽고, 듣고, 생각하고, 말해야 하나 암담했다.

저분은 도대체 얼마나 깊은 분인가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되었다.

 

그 후 교육부 편수관으로 근무하는 내내 그 말을 가슴에 담아 명심하였다. "원고에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2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온 더 무브(On The Move)"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글에 인간애가 들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올리버 색스에게 그걸 알려준 인물은 친구인 어느 시인이었다.

 

 

《깨어남》은 아무튼 놀라운 책이야. 60년대 말 언제쯤인 듯한데 네가 쓰고 싶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던 기억이 난다. 좋은 과학책인 동시에 하나의 작품으로 읽을 가치도 있는 책을 쓰고 싶다고 했지. 여기에서 그걸 확실하게 성취했어. ( ... ) 네가 보여주곤 하던 '그레이트 다이어리'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어. 대단한 재능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한 가지 자질이 너무나 부족했어. 정말이지 가장 중요한 자질, 인간애라고 불러도 좋고 연민이라고 불러도 좋고, 그쯤 되는 것 말이야. 그리고 솔직히 네가 좋은 작가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체념했어. 그런 자질은 가르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 ... ) 그 연민의 결핍이 곧 네 관찰력의 한계라고 믿었지. ( ... ) 그때 내가 몰랐던 건 인간애라는 것이 사람이 삼십 대가 될 때까지 성장이 유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야. 그때 네가 썼던 글에서 빠져 있던 그것이 지금 《깨어남》에서 최고 지휘자 역할을 해냈어. 그것도 아주 멋지게. 네 글쓰기 스타일 자체도 인간애가 지휘하고 있어. 그랬기에 그처럼 벽이 없는, 그토록 감수성이 풍부하고 다양성이 살아 있는 글이 될 수 있었던 거야. ( ... )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온 건지 너 자신은 알려나 모르겠다. ( ... ) (352~353)

 

 

3

 

 

요즘 이신율리 시인의 시집 "호수 빼기 참새"가 시인 사회에, 그리고 시 독자들에게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런데 그 시인이 초기에 시를 가르쳐준 어느 분에게 그 시집을 보내주었더니 이러더란다. "이 시집에는 시인이 보이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생각했다.

시에는 당연히 시인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시는 시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 말은 맞다. 이건 ㄱㄴ이어서 아무도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신율리 시인의 시에 시인이 들어 있지 않다고? 어처구니가 없다. 말이 되질 않는다.

이 시인이 '그분'(이 시인의 시에 시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 이)의 말을 듣고 지금 깊은 상심에 빠졌는지, 시 한 편 한 편에 이 시인을 집어넣으려고 애를 쓰는지, 아니면 말고 식으로 깔아뭉개고 있는지 그건 모르겠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내가 '그분'과 한번 겨루듯 할 일도 아니다. 하물며 그 시인에게 한때 시를 가르쳤다는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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