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15~20년을 살지만 길고양이는 3~7년을 산단다. 겨우 1/3...
그건 길고양이도 보살펴주면 더 살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고양이 전문가(고양이네 집사?)에게 문의하면 금방 알아낼 수 있겠지?
난 그게 아주 궁금하진 않고 몇 년간 살펴보기로 그들의 세대교체가 엄청 빠르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수명에 대해 간단히 찾아보았을 뿐이다.
요즘 저곳에는 고양이들이 다섯이 몰려다니기도 하지만 대개 셋이 다닌다.
그 셋 중에서는 이 녀석이 제일 어리다. 나는 녀석들의 나이를 모른다. 다른 녀석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저 녀석이 다가가면 큰 녀석이 위세를 떨쳐서 저 녀석은 한동안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이 녀석은 혼자 왔다가 먹이통이 비어 있으면 거실 창 너머로 들여다본다. "할아버지, 지금 뭐 해? 정신 딴 데 있지? 그러니까 먹이통 물통이 비어 있는 줄도 모르지? 가끔 다녀가는 주제에 어떻게 그렇게 무성의할 수가 있지? 당장 좀 나와 봐, 응?"
다른 고양이들은 내가 나타나면 줄행랑을 친다. 경계 정도를 3단계로 나눈다면 그들은 당장 3단계를 발령한다. 그러면 이 녀석도 덩달아 달아나지만 곧 뒤돌아서서 나를 바라본다. 흔히 혼자 다니니까 그럴 땐 일단 1단계만 보여주고 그 이상으로 넘어가진 않는다.
부르면 멈춰 서서 바라본다.
먹이를 주겠다고 하면 멀리 가지 않고 기다린다.
눈에 띄는 건 하루에 서너 차례인데, 저 날은 내가 일하는 곳 가까이에서 저렇게 이부자리도 없는 낮잠을 자고 갔다. 뭘 좀 하느라고 떨그럭거리면 낮잠에 방해가 되나 싶었는데 소음이 들려도 깨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본래 그런지, 저 녀석이 내가 그러는 줄 알고 있었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저렇게 한숨 자고 있는 모습이 고마웠다.
누가 나를 믿고 마음 놓고 자고 가겠나. 더구나 저렇게 고운 것치고 내가 있거나 말거나 아니면 내 곁에서 저렇게 마음 놓고 자고 갈 존재가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나.
그런 생각을 하면 저 녀석은 저렇게 아름답고 나는 슬프다.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
일요일 아침나절, 녀석이 나를 배웅하는 모습이다.
"가는 거야? 또 올 거지? 다녀와. 기다릴게."
황인숙 시인이 한겨울밤에도 한여름밤에도 '마감'이고 뭐고 열일 제쳐놓고 이슥하도록 고양이 먹이 주러 다니는 걸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시 따라 얼굴도 고운 그 시인 곁에 가면 사시사철 고양이 냄새가 술술 나겠지? "아이구 고양이 냄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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